그렇게 아빠가 되었다.

튼튼이의 탄생

by Noah

예정일을 지난 후 아내의 통증은 잦아졌다.

낮에는 잠잠하다가 저녁이 되면 시작되는 통증.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퇴근 후 와이프와 걷기였다. 동네에 있는 여자고등학교 운동장을 하루에 1시간 이상씩 걸었다.


예정일을 넘기고 걱정이 생겼다.

만우절에는 안 태어났으면 하는 것이다. 이왕이면 빨리 나와서 3월생이 되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만우절에는 태어나지 않았으면 했다.

생일이라고 해도 축하도 제대로 받지 못할 거 같았고, 실제로 난 중1 때 발 뼈가 부러졌는데 선생님이 많이 안 다친 거 같다고 하셔서 집에 못 갔다. 다음날 깁스를 하고 학교에 갔더니 선생님이 미안해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어쩌면 만우절이랑 상관없을 수도 있다.)



아내가 며칠 전부터 집에 있는 음식들을 다 먹어치우고 정리를 했다. 아이를 낳고 당분간 집에서 밥 먹을 일이 없을 테니 냉장고를 비워야 했다. 저녁 메뉴는 낙지볶음. 색깔만 빨갛지 많이 맵지 않았다. 아내는 낙지를 먹으면 왠지 힘이 날 거 같다고 했다. 오늘도 통증이 올 거라고 예상하고 우리는 9시부터 잘 준비를 했다. 그래 봐야 잠을 많이 잘 수 있을 거 같지는 않았다. 밤이 깊어질수록 잦아지는 통증. 핸드폰 앱을 통해서 진통 주기를 측정했다. 나도 브런치 앱을 만들지만 세상에 참 좋은 앱들이 많다. 들어가서 별 5개 줬음 (물론 광고가 이미 많이 붙어있었지만)


아내는 통증을 참는 성격이다. 조금 아픈 건 일단 참아본다. '조금 더 있다가 병원 가도 될 거 같아.'

우린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나 있었다. 출산 준비물은 차 트렁크에 가득 들어있었고 아내는 출산 후기를 몇 번이나 읽었는지 방법을 달달 외고 있었다. 우리의 출산방법은 가족분만이 아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내가 선택한 병원이었지만 아내에게 너무 미안하고 허탈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 병원에 안 왔을 텐데 라는 생각도 했다.

찾아보니 제주도에서 가족분만이나 르봐이예분만을 하는 병원이 많지 않다. 제주도라서 그런가 보다. 의료 부분은 도시(아니 서울)와 차이가 많이 나는 거 같다.

그렇게 잦아드는 통증. 난 병원에 가자고 아내를 설득했다. 한 번은 더 참아보겠다는 아내. 아내는 많이 아파했다. 그렇게 2~3번 더 진통을 하니 아내도 많이 힘든 듯 병원에 전화부터 해보자고 했다. 간호사와 통화를 했더니 '무통 분만하실 건가요?'라고 되물었다. 마취사가 12시가 넘으면 올 수 없어서 12시 전에 입원을 하셔야 한다고. 우린 무통분만을 예정하고 있었기에 출발! 11시에 출발하여 11시 반에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에 도착하였다고 아이를 낳는 건 아니었다. 무통 시술을 준비하고 (등에 주사관을 삽입함) 내진을 했다. 하지만 아직 아이가 나올 수 있는 상태는 아니라고 했다. 난 분만 대기실 아내 침대 옆에 앉아서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간호사가 병실로 가서 쉬고 있으라고 했다. 아내는 끙끙대고 있는데 나 혼자 가서 쉬라니 참... 안 가고 몇십 분을 그러고 있었더니 아내가 같이 다른 병실로 가자고 해서 다른 병실에 갔다. 그리고 3시간 새우잠을 자는 둥 마는 둥... 나는 조그만 소리에도 계속 깨었다.

'아내가 아프다.' 많이. 우리는 다시 분만 대기실로 이동했다. 이제 진짜 무통주사를 맞기 시작했다. 다시 내진을 했다. 내일 점심때 아이가 나올 거라고 했다. 아내는 아프지 않다고 했다. 표정도 한층 편해 보였다. 다만 울렁거림과 다리가 저렸다. 아내 다리를 주물러 주다가 아내가 잠들고 나는 다시 병실로 올라가서 잠을 잤다.



새벽 6시 분만 대기실로 내려왔다. 아내는 자고 있다. 다행이다. 아프지 않아 보여서.

뭔가를 먹어야 할거 같다. 미리 싸온 바나나와 시리얼 바를 먹었다. 그래도 배가 고파서 김밥 한 줄을 먹었다. 목이 메어왔다. 불 꺼진 병실에서 새벽에 혼자 김밥을 먹는 기분이란. '이런 환경에서도 뭔가를 먹는구나, 내가 살려고 뭔가를 먹는구나' 이런 생각이 계속 들었고, 또 이 상황에서도 잠이 올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있었지만 그 와중에 졸음이 오는 나 자신한테 자꾸만 화가 났다.



7시쯤 담당의사 내진 후 촉진제를 투여했다.

이제 점점 출산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당장이라도 아내가 수술실로 들어가서 아이를 낳을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그건 내 상상이었다. 3시간이 지난 10시가 될 때까지 아무 반응이 없었다. 10시가 되어서 아내는 통증이 심해졌다. 무통주사를 맞고 있는데도 통증이 있다고 했다.

사실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 감이 없다. 도대체 얼마나 아프길래 마취제를 맞고도 아프다는 걸까. 출산의 고통은 생리통의 100배 정도라는데 생리통도 모르겠고... 내가 언제 많이 아팠나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더라. 그냥 많이 아파 보였다. 많이 많이 많이 정말 많이 아픈 거 같다.

11시쯤 이제 아이를 낳아도 된다고 했다. 무통주사 맞는 것을 멈추었다. 아이를 낳을 때는 힘을 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감각이 살아있어야 한다고.

무통을 뺀다는 건 아프다는 것이다. 아내는 아파했다. 그런데도 표정이 밝아 보였다. 통증에 대한 고통. 그래도 아이를 낳고 튼튼이를 만날 수 있다는 좋은 상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들은 참 대단하다 이 상황에서도 아이를 먼저 생각하고 있으니.

이제 아빠는 나가 있으라고 한다. 커튼 뒤로 아내는 간호사와 호흡 연습을 한다.


호흡하면서 힘을 줘보세요

몇 번을 연습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평소 집에서 고양이 자세, 스쿼트, 임산부 요가 등등 많이 연습을 했는데 이게 도움이 많이 되었을까? 평소에 많이 걸은 덕분에 튼튼이는 밑으로 많이 내려와 있었다.

이제 준비는 다 되었다. 11시 30분 아내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참 이 순간 할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더라.

아내와 튼튼이 모두 건강하게 순산하게 해주세요.

15분쯤 지나 간호사가 나를 불렀다. 정말 심장이 덜컹하는 느낌이 들었다. 혹시나 무슨 일이 있을까? 왜 아이 울음소리는 들리지가 않을까? 몇 분이지만 그 시간이 정말 천천히 느리게 지나가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간호사를 따라 수술실에 들어갔다. 막 나오고 있는 튼튼이를 만났고 나는 곧 튼튼이의 탯줄을 잘랐다. 아내는 많이 힘들었는지 얼굴은 땀범벅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표정은 너무 행복해 보였다. 이내 아이를 가슴에 품어보고 그렇게 튼튼이는 11시 58분에 태어났다.


산모와 아이 둘 다 건강하다. 결혼할 때는 모든 유부남 유부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왜 엄마, 아빠가 되어야 어른이 된다는 말을 하는지 조금은 실감이 난다. 우리와 만난 지 며칠 아니 뱃속에서의 시간까지 포함하면 10달... 그런데 그 관계는 이미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책임져야 하고 지켜내야 했었던 그런 관계 같은 느낌이 든다. 꼬물꼬물 눈을 감고 젖을 먹는 아이를 보면서 내 사람의 또 다른 가치가 생김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아빠다.

튼튼이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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