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몰랐던 새벽 시간
내가 몰랐던 새벽 시간
온갖 걱정이 무색할 만큼 순조롭게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불 꺼진 김포공항과 달리 인천공항은 불야성인 듯했고, 여행자들로 붐볐다. 지금이 새벽인지, 낮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티켓팅과 수화물 검사, 입국 심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택배 물류센터에서 컨베이어 벨트에 실린 택배 상자들이 직원들 손을 거쳐 택배 차량에 옮겨지는 시스템에 올라탄 것 같았다. 인천공항의 신속한 출국 절차 덕에 출국 전까지 세 시간이 남게 됐다. 세 시간이면 서울서 KTX 타고 전남까지 갈 수 있는 시간이다.
새벽 5시 30분.
출국장에 들어서니, 일부 면세점이 벌써 개점했다. 카페는 6시쯤, 식당도 6시 30분이면 문을 연다고 했다. 내가 40여 년 간 매일 세상모르고 잤던 시간에 출근한 사람들이 있었고, 여행 가려고 집 나선 사람이 수 백 명이었다. 다른 세상에 발을 들인 것 같아 어리둥절했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면세점을 기웃거리다가 거울을 보고 말았다. 민낯임을 깨닫고, 화장실로 직행했다. 새벽에 텅 빈 공항 화장실에서 여유롭게 화장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화장실은 넓고 청결했으며, 무엇보다 깨끗한 전신 거울이 맘에 들었다.
시간 죽이기 체험
새 사람으로 탈바꿈 한 뒤, 한결 자신감 넘치는 걸음으로 출국장을 구경했다. 끝에서 끝까지 두 번 왕복했는데도 한 시간밖에 줄지 않았다. 간이침대처럼 생긴 1인용 의자에 누워 억지로 잠을 청했다. 눈은 감고 있는데 혼이 자꾸 들락거리는 것 같아 깊이 잠들지 못했다. 남은 한 시간은 아침식사를 하며 때우려 했지만, 식당에 빈 좌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손님이 많아 도로 나왔다. 이 꼭두새벽에 이 많은 사람들이 집을 나와 밥을 먹고 있다니!
갈 곳이 없어 결국 탑승구 앞으로 돌아왔다. 두 시간 전만 해도 텅 비었던 공간이 탑승 대기 승객들로 꽉 차있었다. 탑승 안내 방송이 나오자 사람들이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서 순식간에 줄을 섰다. 나도 반사적으로 동참했다. 비행기 출발 시각이 탑승 순서와 상관없다는 걸 알면서도 왜 느긋하게 앉아 기다리지 못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