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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 Feb 23. 2024

가난하지만 불행하지 않은 이유

Entj 결혼생활

가난은 상대적이다. 감사하게도 '가난'이란 단어를 실제로 체감해 본 적 없이 30 평생을 살아왔고, 영원히 그럴 줄만 알았다. 하지만 막상 결혼하고는 '가난'이라는 게 생각보다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됐다.


가난을 느끼는 순간은 일상적인 순간, 매 순간, 찾아온다.


-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두세 번 고민하게 될 때

- 친구들이 만나자고 하는 장소가 값비싼 팬시 레스토랑일 때,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나 자신을 볼 때

- 친구들의 부산 여행 가자는 말에 다음에 가자고 극구 사양할 때

- 치과 가는 게 예전과 달리 떨릴 때(갑자기 이 상했다고 때우라고 하면 어떡하지..ㅜㅜ?)

- 일하는 중 남편 전화가 올 때(두세 번 받아보았는데, 교통사고인 경우가....)

- 집 안 뭔가가 작동을 안 하거나 고장 날 때(다, 돈이다.)

- 쌀 떨어졌을 때(쌀이 없으면 뭔가 든든하지 않은 기분?)

- 여행 가고 싶은데 예전처럼 훌쩍 떠날 수가 없을 때 등등


그래도 다행인 건, 내가 가난하지만 불행하다고 느낀 적은 없다는 거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첫째로 부모님이 주신 가장 큰 유산, '남을 부러워하지 않는 성격' 때문인 거 같다. 부러움을 떠나 아주 솔직히 말하면 남에게 관심이 없다. 학창 시절에도 단 한 번도 가수나 연예인을 좋아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타인에게 무관심, 나 자신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건강과 행복에만 관심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남이 날 어떻게 보는지'도 관심이 없다. 연애할 때, 찢어진 우산 들고 간 적이 있는데, 지금의 남편이 해맑게 웃고 있는 날 보며 문화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TPO에 맞게 차려입는 것은 중요하지만, 내가 평소 찢어진 티를 입든 찢어진 우산을 쓰든 몸을 가리고 비를 가리기만 한다면 뭘 입고 쓰든 무슨 문제일까?!!


둘째로, 솔직하다. 솔직한 것이 때론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만들기도 하지만, 나 자신에게는 확실히 스트레스를 덜 준다. 예를 들어, 돈이 없는데 친구들이 여행 가자, 고급 레스토랑 가자고 하면 난 솔직하게 '이번에는 금전적 여유가 없어서 열심히 모아서 담에 갈게~!'라고 한다. 친한 친구들은 내 결혼 전 스토리를 모두 아니 알아서 순댓국으로 메뉴를 변경하든, 내가 금전적 여유를 찾을 때까지 날 배려해주곤 했다. 내가 없어도 있는 척하려 하거나 솔직하지 않은 성격이었다면 얼마나 갑갑했을지, 생각만 해도 두통이 오는 것만 같다.


셋째로, 가난은 일시적일 뿐 부자가 되리라는 확신이 내겐 있었다. 500만 원씩 1년을 모으면 6,000만 원이요, 10년이면 6억이니까. 아무런 재테크, 이자 계산 없이도 말이다. 큰 부자는 아니더라도 소소한 부자는 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가난이 가까이 있음에도 오히려 즐길 수 있었다.


물론, 결혼 전 life에 비하면 모든 면에서 현격하게 차이가 나긴 했다. 간혹 백화점 vip라운지에서 마시던 커피라든지(커피보다도 그 여유롭던 느낌이..), 부모님 몰래 미국 유학 중인 남자 친구와 뉴욕, 시카고, 남미 등을 돌아다녔을 때라든지(좋았지~), 스포츠카를 타고 도로를 달리던 시절이(철이 없었지..ㅉㅉ) 꿈만 같이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걸어서 하는 서울 뚜벅이 여행도, 만원으로 시장에서 맛보는 옥수수와 떡볶이도, 점점 발전하는 집밥도, 그리고 점점 업그레이드되는 집을 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정말, 솔직한 심정이다.


넷째로,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있다는 것이 가난해도 불행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주위 친구들 중에는 돈만 보고 결혼한 사람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 사람도 있고, 어느 정도 나이가 차서 조건에 맞춰 결혼한 사람도 있다. 결혼하고 시간이 좀 지나고 보니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다는 것이 흔하지는 않다는 걸 새삼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게 당연한 건데, 그 당연한 것이 생각보다 당연하지는 않더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에 집밥도 맛있고, 산책도 즐겁고, 집에서 보는 영화도 꿀잼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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