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우 Apr 28. 2024

플스 하는 남편

Entj 결혼생활

결혼하고 맞는 남편의 첫 생일에 "생일 선물로 뭐가 받고 싶어?"라고 물었다. 남편은 괜찮다고 하다가 정 그러면 하나 받고 싶은 것이 있다고 아주 어렵게 입을 뗐다.


"플레이스테이션"


당시엔 플레이스테이션이 거의 매년? 2년에 한 번인가 업그레이드해 출시되는지 몰랐지만(그 후로도 2번인가 최신상 플스를 사준 거 같다;;), 난 흔쾌히 OK를 하고 플스를 사줬다.


그 후로 거의 8년. 남편은 아직도 플스를 한다.


콜오브듀티, 스파이더맨, 페르시아의 왕자, 파이널 판타지 등등 여러 게임 cd가 우리 집에 왔다가 당근을 통해 다른 집으로 가는 걸 목격했다.


난 게임엔 소질이 없어 어릴 때도 게임을 잘하진 않았지만 친오빠가 종종 하는 것을 보곤 했다. 내가 중학생, 친오빠가 고2 때인가 3일 동안 밥도 잠도 안 자고 게임을 하다가 한쪽 팔에 마비 증세가 온 친오빠는, 그 정도로 게임을 했기 때문인지 대학을 간 이후로는 게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나도 마찬가지로 게임은 아니지만 만화책에 빠졌었다. 학창 시절 순정만화, 스포츠만화, 역사만화, 추리만화 등등 온갖 만화책을 두루 섭렵했던 난, 대학을 간 이후로는 1년에 한 번 정도 가끔 생각날 때 볼 정도다.


하지만 남편은 목동 키즈라서일까... 학창 시절 게임기를 사 본 적도 없고, 게임은 절대 안 된다는 어머님의 철칙으로 게임을 하지 못했고, 미국 유학을 떠나서야 난생처음으로 플스를 샀다고 한다. 어머님의 걱정과 달리 게임을 하면서도 유학생활을 잘 마쳤으니, 게임 중독은 아닌듯?ㅎ


암튼, 가끔 비가 오는 주말이면 남편은 플스를 킨다. 현란한 손놀림, 날아다니는 다리(겜 속 주인공의 발이...), 기가 막힌 추리까지(요즘 겜은 어려워~~). 그렇게 1~2시간쯤 하면, 몸이 찌뿌둥해서 더 이상 못하겠다고 그만한다. 이해가 안 되는 나...


"오빠! 칼을 뽑았으면 끝장을 봐야지!! 여기서 그만하면 어뜩해!"


"오늘은 충분히 한 거 같아~ 다음번에 맑은 정신으로 할래."


재미없어. 하나를 하면 푹 빠지는 나완 다른 종족...


종종 내가 플스를 사준 걸 아는 주위 사람들은 남편이 게임을 해도 괜찮냐고 묻곤 한다. 글쎄, 남편이나 나나 자유 의지를 가진 인간인데 이게 선택의 문제인 걸까... 그리고 남편이 게임을 하는 게 싫다고 하는 여자분이 있다면, 그건 게임 자체가 싫다기보다는 나와 보내는 시간이 적거나, 나를 위해 충분한 시간을 쓰지 않는 남편일 경우가 많을 거다. 혹은 아이가 있어 안 좋은 영향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아주아주 극소수는 나는 누릴 시간이 없는데 상대방만 누린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나는 위에 해당 사항이 없어서 남편이 플스 하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다. 남편이 과연 몇 살까지 플스에 흥미를 느끼는 지도 흥미진진한 관찰거리다. 후후


최근에 남편이 긴 출장을 가면서 휴대용 닌텐도를 샀다는데 머리가 말랑말랑 해지는 게임이라나? 나와 같이 하자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난 게임은 젬병인데... 과거 알라딘과 라이온킹, 삼국지 이후 첨이라 떨린다. 조만간 머리 쓰는 일이 생길 것 같은 불길한 예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