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우 Sep 27. 2024

한쪽 문을 닫으면 다른 쪽 문을 열어둔다

ENTJ 결혼생활

결혼 생활을 하며 좋은 점은, 내게 안 좋은 일이 생겨도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내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참 희한하게도 남편에게 좋은 일이 생겨서 어느 정도 삶의 밸런스가 유지된다는 사실이다.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신은 한쪽 문을 닫으면 반드시 다른 쪽 문을 열어둔다."라고 조언을 하는 영상 같은 걸 종종 보게 된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체감하게 되는 말 같다.


내가 퇴사하기 직전, 쌓여만 가는 스트레스와 화를 주체하기 점점 어려워지려고 하는 찰나, 정말 뜬금 없이 남편 연봉이 과하게(?) 올랐다는 소식을 접했다. 남편은 그 회사에 4월에 입사했기 때문에 연봉 인상 시기도 아니기도 했지만, 올려줄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도 않았다.


남편이 저녁에 대표님이 식사하자고 해서 저녁 먹어야 한다고 하고 한 3시간이 지났을까(이런 경우도 1년에 1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대표가 그동안 묵묵히 일해줘서 고맙다고 연봉을 올려준다네. 당장 다음 달부터.. 그리고 파리 출장도 갔다 오라고. 다음 달에 파리 가야 할 것 같아."

"너무 잘됐다! 오빠 축하해!!"


그렇게 행복한 일이 있고 나서 며칠 후, 난 퇴사라는 카드를 결국 쓰기로 맘을 먹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나 더 이상은 아닌 거 같아. 퇴사하려고."

"... 잘 생각했어. 지금 생각해 보니, 너 퇴사하게 하려고, 하늘에서 미리 길을 놔준 거 같아. 연봉 인상시기도 아니고, 오를 이유도 없었는데 갑자기 그렇게 올려준 게 얼떨떨했는데. 네가 맘 편하게 퇴사하라고 이렇게 준비해 준 거네."

"어, 진짜 그런가? ㅎㅎ 근데 나 나이 많아서 재취업 안되면 어떡해?ㅠ"

"넌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으니까 이제 쉬어도 돼. 재취업 안되면 놀면 되고, 노는 게 힘들면 50만 원만 번다는 생각으로 사업해도 되고. 내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오~~ 쫌 멋있네!"


처음 남편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 남편은 직업도 변변치 않았고(집안 믿고 취직 준비를 전혀 안 한 탓) 집안도 파산해서 내가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줘야겠다 생각했었는데, 10년이 지나고 보니 그런 생각은 내 자만이자 오만이 아니었나 싶다.


돌이켜보면, 회사에서 늘 당당하게 내 주장을 밀어붙이는 것도, 누구 눈치 안 보고 자유롭게 일하는 것도, 알게 모르게 든든하게 내 옆에 든든하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암튼, 하늘에서 내게 퇴사라는 시련은 줬지만, 남편에게 급전을 주셔서 생활은 기존과 그대로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주셨다. 그리고 퇴사를 결정하고 보니, 새로운 도전을 하라고 나의 등을 떠밀어준 팀장님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침몰하는 배에 있지 말고, 너의 길을 가라고, 하늘이 그렇게 말해주는 것만 같다.


난 퇴사를 결정하고 바로 파리 항공권을 구매했다.


마흔 살의 퇴사

가을의 파리

새로운 도전


앞날은 불안하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

파리에서는 또 무슨 일이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