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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주부 팔자는 아닌가 봐

Entj 사회생활

by 연우

40살에 호기롭게 퇴사를 하고, 일주일이 지났을까.


취업 이후 한 번도 쉬어본 적 없는 내가 일주일을 통으로 노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즈음, 두 군데서 연락을 받았다.


일주일간 백수로 지내면서 난 매일매일 청소를 하느라 주부습진이 걸렸고(왜 이렇게 더러운 게 눈에 띄는지;;), 골프를 시작했으나 전혀 진척이 없었고(역시나 못할 줄 알았다;;), 퇴직금으로 소소하게 주식을 시작했으나 추가로 넣을 돈이 남편이 월급을 주기 전까진 없다는 사실에 살짝 좌절하며, 그렇게 소소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렇다고 뭔가 취직을 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준비를 한다거나 하진 않았는데 그 와중에 두 군데서 연락이 온 것이다.



하나는 퇴사한 직장의 전 팀장님.. 이 분은 내가 나가기 6개월 전인가 나가셔서 다른 직장에 재직 중이셨다.


"OO아, 이력서 하나 보내라. 여기 팀장 자리 비었는데 네가 딱 제격이야"

"이사님 ㅋㅋ 어떤 사람이 필요하신 대요?"

"곤조 있고, 추진력 있게 목표해 낼 사람. 딱 너지? 근데 회사가 좀 멀다. 너 운전 못하지?"

"ㅎㅎ 저 조금만 생각해 보고 말씀드려도 될까요?"


직장 생활이 싫어서 퇴사했는데, 또 직장 생활이라.. 흠

전 팀장님은 좋은 분이시지만 빨대처럼 날 쪽쪽 빨아들이실게 뻔한데 내가 그걸 견딜 수 있을지 선뜻 자신이 생기질 않았다.



다른 하나는, 프리랜서 제안이었다. 기존에 내가 해오던 일을 프리랜서로서 회사와 계약하고 수행하면 되는 일이었다. 전화를 하면서 그 순간 딱 필이 왔다고 해야 하나, 바로 하겠다고 얘기하고 그다음 주 월요일부터 일에 착수했다.


난 타고날 때부터 프리랜서 체질인 것처럼, 물 만난 고기처럼 자유롭게 일하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프리랜서로, 두 달 뒤에는 개인사업자를 내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게 됐다.


프리랜서 첫 정산을 받자마자, 집에 방 하나를 사무실로 꾸미고(최고급 모니터와 마우스, 키보드 구매), 개인사업자를 내고, 명함을 파고, 업무 미팅을 다니고 나니 2개월이라는 시간이 훌쩍 갔다. 지금은 세팅이 다 되어서 최소한의 일을 하며 최고의 효율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원래 대운이 들어오기 직전이 가장 삶에서 어두운 순간이라고... 누가 그랬었지. 작년이 내게는 정말 그랬다. 날 시험이라도 하듯이 말도 안 되는 챌린지들이 계속 쏟아지고, 그걸 악착같이 해내면서 버티던 나날들. 심지어 그렇게까지 애썼는데 승진 누락까지...


그때는 이를 아득바득 갈며, 그래 네가(회사)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함 해보자!! 며 용을 썼는데 지금은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게 수많은 챌린지를 줘서 정말 고맙다" -> 덕분에 웬만한 사건, 사고 터지는 것은 아무렇지 않게 해결하게 됐으니까!

"나를 계속 승진시켜주지 않아서 정말 정말 고맙다" -> 덕분에 난 과장에서 바로 대표가 됐으니까!

"내 실력에 비해 보너스며 연봉 인상이며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해 줘서 정말 눈물 나게 고맙다" -> 덕분에 일은 한 달에 일주일만 하고, 월급은 2~3배 이상 받게 됐으니까!


암튼, 난 퇴사 후 딱 일주일 쉬고, 일하고 있다.


아무래도 가정주부 팔자는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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