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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기도토리 Jun 28. 2024

ep 46. 멜론 케이크


며칠 전, 비가 내렸다.

에어컨은 아직 켜지 않았고 여전히 선풍기로 버티고 있는 상황. 식탁 위에는 며칠 후숙한 멜론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습하고 더운 여름의 한낮. 나는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머릿속으로 계산해 보았다.

이렇게 습한 날… 케이크를 만들 수 있을까?



멜론 케이크

* 바닐라 제누와즈

바닐라빈 페이스트를 넣은 제누와즈에 대해서는 서른 번도 넘게 썼으니 이번엔 간단하게 쓴다.

달걀, 흰설탕, 우리밀가루, 바닐라빈 페이스트, 버터, 두유만 있으면 끝. 달걀 온도를 40도로 올려서 공립법으로 만들고, 진하지 않게 굽는다.


* 크림치즈 샹티 크림과 멜론

마스카포네를 넣은 크림보다 크림치즈를 넣은 크림을 더 좋아해서, 이번에도 크림치즈를 넣은 샹티를 만든다. 발라 먹는 필라델피아를 써서 따로 풀지는 않고, 생크림+설탕+크림치즈 소량을 한 번에 넣어 휘핑한다.

후숙한 멜론은 잘 드는 칼로 손질해 연두색 부분만 잘라 준비한다. 키친타월로 물기를 제거한 뒤에 크림 사이에 샌드한다.


* 멜론과 타임 장식

장식용으로 남겨 둔 멜론을 동그랗게 얹고, 깨끗이 씻은 타임을 빙 둘러 얹으면 케이크 완성.




결론부터 말하자면, 케이크 만들기엔 성공했다. (케이크를 만든 내가 녹초가 되었을 뿐…)

큰 문제는 없었다. 크림도 잘만 휘핑 되고, 아이싱도 차분하게 진행했다. (아이싱하는 내가 더웠을 뿐…)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에 생겼다. 장식용 멜론을 올리기 전에 남은 크림으로 윗면을 장식하려고 했는데, 아무리 휘핑해도 생크림이 휘핑되지 않는 사태가 발생했다. 나는 끝없이 생크림을 휘핑하고, 생크림은 끝없이 휘핑되지 않았다…


아무리 생크림을 불러 봐도…

생크림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치 이 세상에 나와 (휘핑되지 않는)생크림만 남은 느낌이 들 때쯤 나는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 생크림, 네가 이겼다…


알고 보니 습도가 높아서 그런 거였나 보다. 그래서 윗면 크림 장식은 생략하고 멜론과 타임만 얹어 마무리했다. 이런 일은 처음이어서 무척 당황했는데 아무튼 잘 해결되어서 다행이었다.


케이크는 무척 맛있었다. 크림은 고소하고 부드러우며 달기를 딱 맞춰서 과하게 달지 않아 좋았다. 제누와즈는 1센티로 잘라서 그런지 더 촉촉했고 맛있었다.

그리고 멜론. 멜론은 3일 이상 후숙해서인지 정말 맛있었다! 그냥 먹어도 맛있는 멜론을 맛난 생크림과 함께 먹는다니, 이건 정말 최고다.

신선+상큼+달콤+촉촉.


그리고 삼각 스패츌러를 산 김에 옆면에 무늬를 내 보았는데, 예쁘고 독특해서 만족스럽다. 아이싱을 잘 못해도, 크림이 무거워서 케이크가 울룩불룩해져도 슬쩍 가려줘서 더 좋다.




케이크를 만든 다음 날, 바로 에어컨을 틀었다.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케이크 사진도 찍고,

케이크를 한 조각 잘라 언니와 나눠 먹었다.


더운 여름에 케이크 만드느라 고생 했지만, 그래도 만들고 보니 뿌듯하다. 여름에 어울리는 청량한 멜론 덕분에 기분도 좋아졌다.

나는 하하 웃으며 생각했다.

다음엔 꼭 에어컨 아래에서 만들어야지, 하고.


다음엔 무슨 케이크를 만들까?


언니가 그려준 멜론 케이크


_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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