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말을 못 해? 참는다고 알아주는 거 하나도 없더라
식욕 부진의 늪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서서히 식욕이 회복되는데, 음식이 ‘맛있다’고 느낄 때쯤이면 이미 몸무게가 많이 늘어있다. 그러다가 최근에 대책 없이 살이 찐 적도 있었다. 맛있다고 느낄 때 많이 먹고 싶은 내 지방세포들의 강력한 욕구인 것이지. 그 날은 냉동실에서 돼지고기 뭉치를 발견하여 ‘김치찌개’라는 단어와 그 맛을 떠올리게 되었다. 순간 침샘이 확 자극되며 김치찌개가 먹고 싶었다. 돼지고기를 송송 썰어 넣고 푹 끓여서 우려낸, 새콤달콤하지만 깊은 감칠맛을 내는 그런 김치찌개.
그 날의 김치찌개는 성공적! 거기다가 이미 식욕이 돋아있는 상태라 다른 반찬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일단 한 끼에 모두 먹어치우기엔 양이 많았으므로 미리 반을 덜어놓고 먹기 시작했는데 어찌나 허겁지겁 먹었는지 평소 같았으면 TV라도 틀어놓고 적적함을 달랬을 터인데 그냥 식탁에 앉자마자 뚝딱 해치워버렸다. 문제는 그 때문에 생겨버렸다.
김치찌개가 내 입에 매우 맛있어서, 그리고 다른 반찬이 필요 없을 정도로 내가 요리를 잘해서! TV를 틀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맛에 매혹되어 허겁지겁 먹는 바람에. 문제는 다음날 저녁에 발견되었다. 전날, 그러니까 김치찌개를 해서 반을 나누어놓은 날 깜빡하고 냉장고에 찌개를 넣어놓지 않음을 발견한 것이다. '이걸 어쩌지? 상했을지 모르지만 그냥 먹을까?' 생각했지만 먹어도 안 먹어도 상한 걸 먹거나, '상했으면 어째' 하며 불안해하거나 내 손해였다. 부들부들 떨면서 아깝지만 다 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나의 소중한 김치찌개! 찌개를 버리던 그 저녁. 나는 아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나고 내 생일이었다. 후배 한 명이 생일이라고 휴대폰 메신저로 커피와 케이크를 선물로 보내주었다. 물론 카카오에서 서비스로 내 생일을 알려주었겠지만, 무심히 넘기지 않고 챙겨주니 진심으로 고마운 일이다. 후배는 얼마 전 승진을 했는데, 일이 몰리진 않는지 괜스레 걱정되어 물어보았다. 후배 하는 말이 "쉽지 않네요. 고난하네요."라고 한다. 직급이 올라가고 일을 더 많이 배우고 맡아하는 것은 좋겠지만 스트레스나 압박은 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고난'이라 표현하다니 구체적인 상황을 듣지 않아도 나까지 조금 속상했다. 메신저에 이렇게 입력했다. "사람은 누구나 말을 해야 알더라고. 힘들면 말을 해야 돼. 참고 있으면, 상대방은 몰라."
영화 ‘리틀 포레스트(2018)’에는 이런 명대사가 나온다. “아무 말도 안 하고 상대방이 알아주길 바래? 말 안 하고 참는다고 알아주고 그런 거 하나도 없더라. 내뱉고 싶을 때 내뱉어야지 속에 독이 안 쌓인다고!” 말을 뱉고 나서 끝까지 참을걸 괜히 말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나는 문제가 생기면 숨거나 회피하기보다 정면돌파를 택하는 쪽이다. 그렇다고 싸우는 것을 즐기진 않는데, 꼭 해야 될 말이라고 판단했다면 참고 앓느니 저지르고 아파하는 쪽을 택했다. 후회했다고 생각했지만 반대로 참았다면 더 많이 후회했을 것이다. 역시나 참지 않고 말 한쪽이 후련했다. 결과는 모두 내가 책임지면 되는 것이었다.
만약에 내가 끓인 찌개에 영혼이 있어서, 말을 할 줄 알았다면. "저기요. 저 좀 냉장고에 넣어주실래요?"하고 말을 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찌개가 소중하지 않아서 잊은 것이 아니었다. 때때로 소중한 것들도 잊고 산다. 그냥 정신이 없어서 말 그대로 깜빡하기도 하고, 미처 눈에 띄지 않아서 챙기지 못하기도 한다. 치사스럽게, 구차하게, 내가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상대가 알아주길 바라겠지만, 안 그렇다. 지금도 나는 반을 나눠 놓은 찌개를 못 먹은 것이 분명한 내 탓임에도 찌개를 원망하고 있다. 왜 말을 못 했냐고 하면서. 찌개가 말을 할 줄 알았다면 아깝게 버리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상대방 중에서도 그런 분이 있을지 모른다. "왜 그때 내게 솔직하게 얘기해주지 않았어? 나는 정말 몰랐어."라고 할만한 사람.
어쩌면 일에 있어서도 제때 할 말을 현명하게 해야 한다. 억울하기 전에 말해야 한다. 과부하가 걸리기 전에 말하고, 힘들어지기 전에 말을 하고. 번아웃이 오기 전에 말을 하고. 그 누구보다 나를 위해서 말을 해야한다. 어찌 보면 사람은 단순하고 어리석고 일차원적이라 보이는 대로 보고 들은 대로 판단한다. 내가 내 입장을 적시에 말하지 않으면 내 글의 '찌개'가 되어버릴지 모른다. 그냥 가만히 있다가 원망을 듣게되는. 아무 잘못도 없는 아까운 존재임에도 버려지거나 잊혀지게되는. 대신 내 이야기를 상대에게 말하려고 결심했을 때에는 감정을 버리고 이성적으로 말할 것을 권하고 싶다. '찌개'의 입장에서 내가 얼마나 맛있는지 어필하지 말고, 내가 냉장고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만 설명하자.
다시 식욕부진의 시기가 왔다. 그래서 맛있었던 그 찌개가 더욱 생각난다. "왜 말을 못해! 냉장고에 넣어달라고 왜 말을 못했냐고!"
*** 이 글은 에세이 베스트셀러 ‘너의 사회생활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에 수록된 초고입니다.
***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 불면증 오디오클립 '책 읽다가 스르륵'을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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