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청안 에세이작가 Oct 26. 2020

나의 하찮은 초능력

타인의 발소리를 외우는 사람

   나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이게 초능력이라면 참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그 정도의 능력은 아니다. 하지만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초능력으로 비칠 수도 있는 ‘능력’이다. 나는 소리에 민감한 편인데, 그래서인지 반복적으로 소리를 들으면 저절로 학습이 된다. 그래서 가지게 된 능력이 사람의 발소리를 외우게 되는 이상한 능력이다. 이게 무슨 능력이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 사소한 능력으로 인하여 가끔 재미있다. 특히 회사에서. 탕비실에서 뒤를 돌아보지 않고도 사람이 걸어오는 소리만으로 누군지 맞춘다거나 여자화장실 칸 안에 앉아있으면서 세면대에서 손 씻는 사람이 누군지 맞추는 그 정도의 재미랄까.      


   사람마다 바닥을 내딛을 때 내는 소리가 다 다르다. 비슷한 사람들도 있지만 유심히 들어보면 미세하게 조금씩 다르기 마련이다. 이는 걸음걸이의 속도와 신발의 소재, 발이 바닥에 닿을 때 신발을 끄는 정도에 따라서 소리가 달라지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다만 커다란 대전제가 있으니, 신고 다니는 신발이 자주 바뀌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구별하기 어렵다. 웃긴 것은 낯선 발소리를 들었을 때의 내 상태다. 누구의 발소리인지 확인하기 위해 기어코 목을 돌려 얼굴을 본다. 낯선 자를 경계하는, 무슨 치와와나 미어캣 같다. 그리고 한동안 익숙했으나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발소리를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어! 이 소리 그분인데?' 하고 확인을 한다. 실제로 그랬다. 본사에 함께 있다가 계열사로 법인 이동한 부장님이 한분 계셨는데 아주 오래간만에 그분 발소리를 듣고 일하다가 깜짝 놀랐던 경험이 있다. 소리에 의한 반복 학습의 결과가 이렇게나 신기하다.       


   이런 나도 재미있지만 다른 사람들도 관찰하다 보면 재미있다. 걷는 소리를 들어보면 성격이 나온다. 늘 빠르게 걷는데, 성격이 느긋한 사람은 없다. 조선시대 한량처럼 세월아 네월아 걷는데 업무 속도가 빠른 사람도 절대로 없다. 그리고 걸을 때 소리가 크면 클수록 타인에 대한 배려심은 좀 부족한 편이고 과시욕이 크다고 봐야 한다. 소리가 작으면 작을수록 예민하고 배려심이 높으며 조금은 소심할 수 있다. 걸어 다니며 내는 소리 또한 습관이며, 본인도 어느 정도 인지 가능한, 살면서 쌓아온 본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발이라는 신체부위가 참 솔직하다. 얼마 전에 소개팅을 했다. 약 한 시간 가량 대화를 나누다가 나는 그 사람과 다시는 못 보게 될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발이, 내 발이 자꾸 그 사람과 먼 쪽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출입문 쪽으로 몸이 틀어지면서 자꾸 가방을 만지게 되었다. 대화가 불편하다거나 뭔가가 지극히 마음에 안 든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었는데, 발이 자꾸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것을 보니 '아니다'싶은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지하철 역 앞에서 헤어질 때도 내 발의 방향은 집에 가기 편한 쪽이었지 그 사람을 배웅하기 좋은 방향이 아니었다. 발의 방향은 숨기기 어렵다. 발끝은 호감 가는 사람을 보고 있으며, 편하고 즐거운 쪽으로 움직인다.           


   발 관리를 잘하면 오장육부가 건강하다는 말이 있다. 어려서는 저렴하고 예쁜 구두를 찾고, 시간이 지날수록 디자인보다는 좀 투박해도 편한 신발을 찾는 내 모습만 보아도 맞는 말인 것 같다. 종종거리면서 종일 이것저것 많은 일들을 해내는 내 발이 좋다. 그리고 사람들의 발소리를 외우고 신경 쓰는 내가 좋다. 나의 곁에서 각기 다른 소리를 내주는 소중한 타인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각자의 삶을 위해 뛰고 걸으며 소리를 내는 우리들의 발이 때론 안쓰럽지만 그 삶의 무게만큼 꽉 실린 체중만큼 참 좋다.


   사람에게는 각양각색의 발소리만큼 다양하게 눈부신 매력이 있다. 내가 그걸 일일이 외워주진 못하겠지만 각자가 스스로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가장 솔직한 신체부위인 발이, 걸을 때마다 세상을 향해 내딛는 소리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또한 그대다운지. 당신의 발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가장 당신답게 탐구하여 한번뿐인 인생 재미있게 전진할 준비가 되었는지? 자신만의 발 소리를 내면서 다들 매력있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능력같지도 않은 이상한 능력으로 가끔 미소짓고 사는 사람의 작은 바람이다.





*** 이 글은 에세이 베스트셀러 ‘너의 사회생활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에 수록된 초고입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2238032?LINK=NVM&NaPm=ct%3Dlimwkl0g%7Cci%3D466f68f79374d4ec8075e3b14c4de6c6c8675b36%7Ctr%3Dboksl1%7Csn%3D5342564%7Chk%3Db8a88d2bb42f19cab6ebe7815e0732af4412657f








***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ejkGb=KOR&linkClass=&barcode=9791185257945





***  불면증 오디오클립 '책 읽다가 스르륵'을 연재 중입니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5305



이전 02화 그 찌개가 말을 할 줄 알았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