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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구름 Oct 17. 2022

[,] 부니는 김치볶음밥

단체활동에서는 자연스럽게 외향적인 사람 주위로 사람이 모인다. 나는 멀리서 그런 사람을 구경하는 쪽이다. 어떻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저렇게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신기해 하면서 말이다. 생각해 보면 열여섯 전까지는 제대로 된 친구도 사귀지 못했다.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마음도 없었다. 그냥 공부 잘하는 아이로 선생님에게 칭찬 받는 것이 기뻤다.


그러다 운 좋게 맘이 맞는 친구들을 사귀었지만 고등학교로 진학하며 다시 혼자가 되었다. 안 그래도 내성적인 성격인데 그 시기 가정 불화까지 겹쳐 학교에서 음침한 학생으로 자리잡아 버렸다. 친구들과 한 마디도 안 섞고 쉬는 시간이 되어도 꼼짝도 않는, 아무리 봐도 다가가기 힘든 학생이었다. 그런데도 나에게 다가오는 친구가 있었지만 나는 대놓고 선의를 무시하며 차갑게 관심을 끊어냈다. 어차피 나는 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다고 생각했고 누군가와 친해지는 일이 귀찮게만 느껴졌다.


스무 살 이후로는 놀라울 정도로 성격이 밝아졌다.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과거와 명백히 선을 그었다. 사실 활달한 성격을 타고난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이런 변화를 이끌어낸 일등공신은 돈이었다. 자취를 하려면 알바를 해야 하는데, 이십 대에 할 수 있는 알바라는 게 대부분 서비스직이었다. 편의점, 식당, 빵집, 놀이공원, 테마파크, 여행 가이드, 체험학습 강사 등으로 일하면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과 마주치다 보니 억지로라도 웃어야 했고 그게 습관이 되었다. 알바 면접을 볼 땐 '제발 뽑아주세요'라는 마음으로 부드러운 미소를 장착했고 일하는 중에는 '제발 화내지 말아주세요'라는 마음으로 손님에게 친절한 미소를 띠었다. 무엇보다 학교와 달리 일터에서는 또래들과 어울리는 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기 때문에, 퇴근 후 술을 마시거나 노래방에 가면서 친분을 쌓았다. 그렇게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게 제법 자연스러워졌다.


백수가 되고 외부와 나를 단절하면서 내 성격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 때는 늘 흥분 상태여서 제대로 내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았는데 역시 나는 혼자일 때 가장 나다웠다. 진심으로 속까지 친해진 친구가 있었나 생각해 보면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무리의 일원으로 살아가려면 늘 착해야 한다는 이상한 압박에 사로잡혀 주변 사람들의 취향에 따랐고 나조차도 놀랄 정도로 주변의 분위기를 잘 받아들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줏대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직도 인간관계는 힘든 숙제이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면 몰랐던 세계가 열리는 동시에 내 세계가 그 사람으로 한정되기도 한다. 다른 사람에게 부니면서 내 것을 지킨다는 건 어떻게 하는 걸까?


부닐다
가까이 따르며 붙임성 있게 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분식집에서 김치볶음밥을 사먹는다. 내가 좋아하는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한 끼이다. 김치볶음밥은 다른 김치 요리에서 느끼기 힘든 위안을 준다. 처음 서울에 올라갔을 때 고시텔에서 지냈는데 알바를 다녀오면 왜 이렇게 허기가 몰려오는지 밤마다 폭식을 하고 잠들었다. 달걀 한 판 살 여유도 없던 나는 무상 제공 되는 밥과 김치만 프라이팬 넘치도록 넣고 볶은 다음 십 분만에 먹어치웠다. 중국산 공장 김치에 푸석한 쌀밥이라 맛은 형편없었지만 매번 꿋꿋이 김치볶음밥을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조금이라도 덜 초라해지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도 뭔가 요리를 해먹는다는 위안이 필요했다. 기름기가 도는 음식을 달라고 보채는 위장을 이렇게라도 잠재우고 싶었다. 김치볶음밥은 초라한 재료끼리 모여 다같이 그럴듯해지는 게 좋았다. 윤기 없던 밥알이 기름기에 번들거리고, 깊은 맛이 부족한 김치의 단점이 고소한 기름 냄새 뒤로 감쪽같이 숨는 걸 보면 마음이 넉넉해졌다.


한때는 나처럼 부실한 재료에 풍미 없는 인생은 최대한 혼자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않으리라 속단했다. 정작 나야말로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말이다. 개운한 맛이 일품인 남도 김치로 태어나지 못한들 어떠랴. 속이 구쁜 누군가의 배를 든든하게 채워줄 김치볶음밥이 될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걸.


같이 어울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정작 본인은 의식하지 않지만 시부저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온기를 전달한다. 그래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게 하고 사람들은 은근히 소속감을 느낀다. 김치볶음밥을 먹을 때 외로움이 달래지는 이유가 그것일까. 김치볶음밥 속에 있는 김치가 씹힐 때마다 시큼하고 고소한 맛이 톡톡 터진다. 그렇게 개성이 강하면서도 김치는 절대 밥을 밀쳐내지 않고 오히려 가장 조화로운 방식으로 부닌다. 김치볶음밥을 열심히 먹으면서 나도 김치의 미덕을 닮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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