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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구름 Jul 04. 2024

#4. 계산을 실수한 계산원

    계산원으로 일하면서 가장 긴장될 때는 바로 시재를 점검할 때이다. 오차가 0으로 나올 때는 얼마나 기쁜지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편의점에서 일할 때는 시재가 부족하면 사비로 메워야 했기에 현금 계산에 유독 예민했다. 마트에서 일할 때는 따로 뭐라 하진 않으셨지만 일단 오차가 0이 아니면 어디선가 실수를 했다는 뜻이라서 영 찝찝했다. 손님이 계산 중 뒤늦게 잔돈을 내거나, 현금으로 산 상품을 가격이 다른 상품으로 바꾸거나, 잔돈을 한가득 가져와서 지폐로 바꿔달라는 등 각종 변수가 생긴 날이면 퇴근 전까지 늘 긴장한 상태였다. 어떤 손님은 소액이면서 카드를 내서 미안하다고 하시는데 모르는 말씀이었다. 계산원 입장에서는 카드 계산이 몸도 마음도 가장 편하다.


    계산원도 사람인지라 언제 어디서 실수할지도 모른다는 걸 십분 이해하기에, 내가 손님일 때는 계산대를 떠난 뒤 꼭 제대로 계산되었는지 확인한다. 하루는 편의점에서 2+1 행사 상품을 골라 편의점 전용 어플로 계산하려고 했다. 어플에 등록해놓은 카드에 잔액이 있는지 잘 모르는 상태여서 해보고 안 되면 그냥 가자는 마음이었다. 걱정과는 다르게 계산원이 별 말을 하지 않았지만 긴가민가해서 섣불리 계산대를 떠날 수 없었다.

"다 된 거예요?"

"네."

계산원은 다시 한 번 POS기 화면을 바라봤고 나는 혹시 모르는 마음에 되물었다.

"진짜 된 거죠?"

"네, 된 거예요."


    이번엔 계산원의 얼굴에 살짝 귀찮은 기색이 드러났다. 내가 확신이 들지 않은 것은 작은 소리긴 해도 POS기에서 "다시 시도해 주십시오."라는 안내 음성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산원은 내가 머뭇거리는 까닭이 할인이나 적립 때문이라고 오해한 모양이었는지 부가 설명을 이어갔다.

"이걸로 결제하시면 적립이랑 할인도 자동으로 들어가요. 여기 보세요."

계산대에서 나온 계산원은 손수 가격표를 비교해주면서 이런 표시가 있으면 적립이 더 되고 특정 결제 수단을 쓰면 추가 할인이 된다고까지 알려주었다. 이미 알고 있는 정보였지만 나는 계산원의 수고에 감사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드리고 편의점을 나왔다.


    그날 밤, 뒤가 개운치 않았던 나는 앱으로 카드 결제 내역을 찾아보았다. 역시나 편의점에서 쓴 내역이 없었다. 솔직히, 갈등했다. '두 번이나 확인했는데 됐다고 했으니까 내 잘못은 아니잖아?' 하지만 삼천 원에 양심을 판다고 생각하니 내가 너무 값싼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았다. 그렇다. 나는 어디까지나 내 마음 편하자고 바른 결정을 내렸다.


    삼자가 사정을 들으면 내가 의도적으로 도망친 걸로 오해받을 수도 있기에 부디 그분이 오늘도 계시길 바라며 다음 날 같은 편의점으로 향했다. 계산원은 간이 의자에 앉아 상품을 진열하고 있었다. 날 알아보고 원망의 눈초리를 보낼까, 화내진 않을까 별 상상을 다했는데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혹시 어제도 근무하셨어요?"라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아니요."였다. 나는 어제처럼 같은 상품을 골라 계산대로 들고가서는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사실 어제도 제가 이걸 샀는데요…."

여기까지만 듣고 계산원은 입을 벌리며 손뼉을 마주쳤다.

"아! 그 분이구나!"


    계산원은 POS기 옆에 붙여놓은 영수증을 떼어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러고 나선 어제 그 분이 본인 돈으로 계산하셨다고, 어찌나 속상했던지 근무 내내 그 일을 신경 쓰다가 계산 실수까지 해서 시재까지 천 원이 비었다는 얘기까지 해주셨다.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잘 알기에 잠시라도 양심을 버릴까 고민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나는 이러저러해서 어제 그냥 갔다가 계산이 안 되어 있어서 다시 온 거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그 분이 이렇게 말했다.

"안 그래도 제가 그랬거든요. 이럴 때 다시 오는 손님은 백 명 중 한 명 있을까 말까일 거라고."

이 말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사실 저도 계산원이거든요."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역시 안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같은 일을 하니까 다시 와준 거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그냥 평범한 손님이 양심을 지킨 걸로 생각하시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 어쨌든 나는 어제 가져간 것까지 제대로 계산을 한 뒤 가벼운 마음으로 편의점을 나왔다.


    나라고 일하면서 실수가 없던 게 아니다. 상품을 교환하러 오신 손님이 계셨는데 차액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내가 돈을 덜 드리고 말았다. 손님이 떠난 뒤에야 내 실수를 알아챘고 아차 싶었다. 자신 있게 영수증까지 손님께 보여 드리면서 이렇게저렇게 해서 이만큼 받아가시면 돼요, 똑똑한 척까지 했는데. 다행히 마트는 포인트 적립 때문에 손님 연락처가 다 저장되어 있었기에 바로잡을 방도는 있었다. 다만 내가 걱정하는 건 손님의 반응이었다.


    전화를 걸어보니 나이든 남성이 받았다. 분명 내가 상대한 손님은 할머니였는데 남편 분인가 싶었다. 나는 여차저차해서 돈을 덜 드렸다고, 죄송하지만 시간 되실 때 한 번 마트에 들려 달라고 공손히 부탁드렸다.

"어쩌다 돈을 덜 줘!"

할머니와 달리 그분은 목소리나 말투가 억세고 사나워서 통화 내내 심장이 우둔우둔 뛰었다. 전화를 마치고 나니 계산도 제대로 못하는 자신이 한심해서 기분이 울적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계산원 경력이 몇 년인데. 이런 단순한 계산도 제대로 못하다니.'

젊은 사람도 아니고 나이드신 분을 왔다갔다 번거롭게 했으니 면목이 없었다. 심십 분 정도 지나니 할머니가 오셨고 나는 죄송하다고 고개를 연신 숙이며 돈을 건넸다. 걱정과 달리 할머니는 짜증 한 번 내지 않으시고 웃는 낯으로 말씀하셨다.

"영수증을 찬찬히 보니까 인자 알것네. 요 금액만큼 덜 받은 것이제?"

"예, 맞아요. 죄송해요. 괜히 두 번 걸음하게 해서…."

"아니여, 괜찮어."

할머니는 끝까지 다정한 웃음을 머금은 채 느릿한 팔자걸음으로 마트를 빠져나가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다짐했다. 계산원의 정석 같은 사람은 될 수 없을지언정 정석 같은 손님이 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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