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염 일기

by 남정은

길을 걷다 보면 가방에 인형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학생이건 직장인이건 나이가 많건 적건 모두 귀여운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면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

인형 자체도 귀엽지만 저 인형을 가방에 다는 마음이 더 귀엽다.

아무리 사날없는 사람이라도 마음 한 구석에 무언가를 귀여워하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니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고 싶어졌다.

역시 귀여움을 마주하는 것은 기분이 좋아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하루에 한 번이라도 귀여움을 느끼면 살 만한 세상이라는 희망이 좀처럼 시들지 않는다.

어느 날은 나무 탁자에 있는 옹이 무늬가 꼭 신나서 펄쩍 뛰는 당나귀처럼 보였다.

옹이는 나무가 햇빛을 더 받기 위해 가지를 뻗을 때 생기는데

그렇게 보면 햇빛이 나무 몸속에 몰래 낙서를 해놓은 셈이다.

간지럼태우듯 나무 곳곳에 옹이를 새기는 햇빛을 상상하니 빙싯 웃음이 지어졌다.

나무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너도밤나무는 열매 모양이 밤과 비슷해서,

나도밤나무는 밤나무와 이파리 모양이 비슷해서 붙은 이름이다.

너도밤나무는 그 나무를 보는 사람 입장에서, 나도밤나무는 불리는 나무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어느 쪽이든 이 얼마나 귀여운 이름인가.

찾아보니 귀여움은 어디든 있었다.

물가의 나뭇잎처럼 두둥실 떠 가는 구름,

울퉁불퉁한 바닥을 꼬물꼬물 기어가는 애벌레,

사람들이 위로 지나가든 말든 느짓느짓 지나가는 달팽이,

머루눈으로 먹이를 찾으며 깡짱깡짱 뛰는 까치,

담벼락 위에서 게슴츠레 뜬 눈으로 쉬고 있는 고양이,

어린아이가 가방에 삐뚤빼뚤 써놓은 글씨,

버스에서 우연히 들은 학생의 재채기 소리,

두드리면 통통 소리를 내는 두툼한 뱃살까지

귀여움은 불쑥불쑥 내 눈에 띄었다.

그래서 귀염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살다가 힘 빠지는 날에 두고두고 읽고 싶었다.

귀엽다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에는 사랑스럽다는 말이 들어있다.

나는 내가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잘못 알고 있던 모양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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