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일포스티노」를 봤다.
마리오가 별을 녹음하는 장면이 한동안 계속 떠올랐다.
마리오는 고향으로 돌아간 네루다를 그리워하며
훗날 그가 들을 수 있도록 고향의 아름다움을 녹음기에 담는데
그중 하나가 별소리였다.
별에 소리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를 녹음하듯,
마이크를 든 손을 하늘로 쭉 뻗어 까막거리는 별을 담았다.
녹음본을 들으면 그 부분엔 정적만 흐르겠지만
그렇다고 마리오의 행동이 부질없다고 할 수 있을까.
누군가 녹음기밖에 없다면 그 사람은 아름다운 별빛에 마이크를 댈 수밖에 없다.
누군가 사진기밖에 없다면 그 사람은 누군가의 목소리를 허공으로 남길 수밖에 없다.
무엇이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담을 수 있는가 생각해 보면 우리에겐 아직 그런 것이 없다.
그나마 도움을 주는 것이 언어인데 우리가 쓰는 말과 글은 늘 오해의 위험이 따른다.
마음과 먼 말이 나가기도 하고 마음과 가까운 말을 써도 상대방은 다르게 받아들인다.
누구도 표준국어대사전에 규정된 뜻 그대로 쓰지 않는다.
어렴풋이 그 근처에서 바장거릴 뿐이다.
그 혼돈의 발자국 속에서 상대방의 진심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진심을 주고 받는 순간은 분명히 있다.
사람들의 마음이 이어지는 기적은 오직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 있다는 믿음 덕분이다.
추레하고 구접스러운 삶 속에서도 가장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가는 의지,
그것이 결국 아름다움의 멸종을 막는다.
공감 능력은 결국 공감각적인 것을 감지하는 능력이다.
별을 녹음해서 들려주는 사람의 마음을 느끼는 것이다.
사람은 본디 한계로 뒤덮인 불완전한 존재가 아니던가.
누구도 사진기와 녹음기를 모두 가지고 있지 않다.
설령 둘 다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 중 누군가는 볼 줄만 알고 누군가는 들을 줄만 안다.
그렇다고 좌절할 일은 아니다.
우리는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끊임없이 마음을 전하면 된다.
내 눈에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보다 그 별을 향해 곧게 뻗은 마리오의 팔이 더 아름다워 보였다.
녹음본을 들으면 분명 별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