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적을 뒤돌아보면 나는 참 쉽게 시작하고 쉽게 그만두는 사람이다.
취미도 이것저것 많이 건드렸지만 악기건 공예건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고
모임도 여기저기 많이 기웃거렸지만 오래 이어간 인연이 없다.
평생 여기서 일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다가도
어서 여길 관둬야 한다는 충동에 사로잡혔고
학구열이 치솟아 대단한 각오로 강의를 신청해놓고선
의욕이 쉽사리 시들어 억지로 자리만 지키는 꼴로 강의를 끝마쳤다.
하다 못해 책을 읽어도 도입부를 채 넘기기도 전에 다른 책에 눈이 갔고
글을 써도 한 편을 마무리하기 전 다른 소재가 줄줄이 떠올라 갈팡질팡 헤맸다.
꾸준함이란 내가 절대 지닐 수 없는 무기인 걸까.
이렇게 생각하니 좋고 싫음에 확신이 사라졌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나를 마주칠 때마다
내가 남들보다 괜한 힘을 더 써가면서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문득 심리 검사에 끌렸다.
내 상태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근거가 필요했다.
이것저것 검사를 받다 TCI 기질 검사를 알게 되었다.
기질과 성격을 따로 분석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내가 쉽게 혼란에 빠지는 건 성격 탓이라고 여겼는데
결과지를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기질의 세 가지 척도 중 하나인 자극 추구는 최고 수치인 100, 또 다른 척도인 위험 회피는 99였다.
행동활성화 시스템과 행동억제시스템이 동시에 작동하는 셈이었다.
검사자 분 말로는 이런 기질은 액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으면서
차를 운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셨다.
내가 왜 이렇게 안절부절못하며 쉽게 지치는지 이해가 갔다.
자유분방하고 충동적이고 무절제 속에서 살아가면서
불확실성을 두려워하고 예기치 못한 상황을 피하려 하는 게 바로 나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당혹스러운 결과가 위로가 되는 건 왜일까.
기질은 자극에 반응하는 정서적 반응 성향으로 유전의 영역에 있다.
타고났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무턱대고 낯선 환경에 덤벼놓고 작은 자극에도 달달 떨던 내가
단지 어려서 그런 것도 아니었고 어리석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런 기질이었을 뿐이다.
기질이 아닌 성격을 나타내는 척도,
그러니까 자율성, 연대감, 자기 초월 요소는 모두 중간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걸 보고 검사자 분이 "그동안 노력을 많이 하셨네요."라는 말을 두 번이나 하셨다.
겨우 중간인데 이런 말을 들어도 되나 싶다가도 나에겐 중간도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워낙 나라는 사람에게 믿음이 없다 보니 내가 애쓰고 있는 게 단지 그런 것 같은 기분이라고 넘겨짚었는데
실제로 애쓰면서 산 게 맞다고 인정받는 한 마디였다.
내가 괜찮은 방향으로 가고 있었구나. 그거면 됐다.
검사 이후에도 내 삶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새로운 것에 홀려 따라가면서도 마음 졸이느라 한 순간도 즐기지 못한다.
다만 이전과 다른 점이라면 남탓을 하지 않듯 함부로 내탓도 하지 않는다.
방지턱 하나 없는 길에서도 내 일상은 왜 자꾸 덜컹거릴까 풀리지 않던 의문에
합리적인 답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낙관이 비관을 이겼다.
언젠간 새로운 것과 익숙한 것을 떠나
더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눈이 뜨일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그날을 위해 지금 헤매는 것쯤 얼마든지 속없는 웃음으로 넘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