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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구름 Mar 04. 2021

남이 염장을 지르는데 왜 이렇게 행복하지?

결혼해도 똑같네(2012)/네온비/다음 웹툰

이 부부, 대충 봐도 매력이 심상치 않다. 신혼 부부인 주제(?)에 손님이 오면 다인용 보드게임을 할 수 있다며 두 손 들고 환영한다. 둘이 있을 때 하는 장난만 보더라도 개그 내공이 상당하다. 서로가 서로를 웃겨해 죽는다. 행여 건수라도 하나 잡히면 놀리기 바쁘다. 가만 보고 있자니, 너랑 있으면 재밌어서 좋다는 캐러맬 작가님의 청혼이 백 번 이해가 간다. 둘이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독자까지 덩달아 유쾌해진다. 이보다 더 바람직한 염장질이 또 있을까.


두 사람의 신혼 생활은 알콩달콩, 아기자기, 오밀조밀, 잔재미가 넘쳐난다. 제 3자의 입장에선 어디가 귀여운지 도통 알 수 없는 캐러멜 작가님의 행동인데 그걸 귀여워서 못 견뎌하는 네온비 작가님이 귀여워서 빙긋 웃게 된다. 아니, 진짜로 캐러멜 작가님이 세계에서 가장 귀여운 사람이라면 독자들은 질시에 불타올라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을지 모른다. 캐러멜 작가님이 아이돌처럼 귀엽고 잘생기고 근사한 사람이 아니라서(작가님 죄송합니다. 팬이에요.) 네온비님의 달달한 애정 표현이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이다. 아무리 부러움이 샘솟아도 열렬히 응원하게 되는 마성의 한 쌍이다.


연애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데 왜 사람들은 결혼을 하는 걸까, 궁금하다면 이 만화를 적극 추천한다. 분명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다. 하지만 결혼을 해야만 보이는 반려자의 모습이 있고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다. 그것이 대단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사소해서 더 소중할 것이다. 아몬드를 나눠먹을 때 본 상대의 표정이 자꾸 떠오른다든지, 매주 목요일은 치킨 데이로 정해놓는다든지, 심각한 분위기에서 갑자기 방구가 나온다든지, 보풀제거기에 빠져 하루 종일 모든 옷의 보풀을 떼느라 녹초가 된다든지 하는 생활밀착형 추억들처럼 말이다. 쩌면 크고 대단한 행복은 어떻게든 꾸며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작고 세밀한 행복은 직접 살아보지 않는 한 절대 다른 방식으로 얻을 수 없다.


사랑의 정의가 여러가지가 존재하지만 나는 사랑은 추상적인 말로 정의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다. 구체화되지 않고 실현되지 못한 사랑은 허상이나 낭만에 가깝다. 사랑의 실체를 드러낼 수 있는 건 결국 사람이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만들어내는 모습이 곧 사랑이다. 둘 만의 소통 방식이 생겨나고 둘 만의 세계가 구축되고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둘만이 풍기는 분위기가 생기고, 살아가는 것과 사랑하는 것 사이 명확한 경계를 그을 수 없게 되는 것, 그것보다 더 명확한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어쩌면 사랑의 궁합보다 찾기 힘든 게 개그 궁합이 아닐까. 그런데 이 부부는 그것마저 완벽하다. 둘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피식피식 나는데 그게 두 사람이 개그 천재여서가 아니라 두 사람의 합 때문이라는 것을 금방 눈치 챌 것이다.


웃음 코드에는 절대적인 기준이 없어서 상대가 어떻게 반응하고 받아주느냐에 따라 개그의 성패가 나뉜다. 그러니까 이 부부는 서로의 개그 재능을 극대화하는 데 재능이 있다고나 할까. 자세히 보면 재미 없기만 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어딘가 웃긴 구석이 한 군데는 있겠지. 그걸 발견하고 끄집어내는 데는 역시 누굴 만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부부는 서로의 웃음꽃을 활짝 피워줄 수 있는 봄 같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다 생각이 들면서도 툭툭 튀어나오는 작가의 상상력을 보면 역시 어딘가 독특하다. 상상력이 잘 발동되는 사람의 장점은 어디서든 재미를 느낀다는 점이다. 평범하고 익숙한 것에 기발한 비유가 더해지면 그 자체로 웃음을 유발한다. 사실 웃고 사는 데는 상상력도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 웃음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우리가 찾지 못할 뿐이다. 고맙게도 그걸 짚어내주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생활툰이다.


행복하게 사는 건 지난한 일일지라도 웃고 사는 건 의외로 쉬운 일이다. 공감만 하면 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직업적인 부분만 제외하면 우리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분명 우리의 기억 속에도 만화에 등장하는 것과 비슷한 실수와 경험이 있다. 혼자 겪을 땐 그저 그렇게 넘어갔던 일도 만화 속에서 발견하면 웃음이 새어나온다. 사람은 그런 존재다. 서로 닮은 점을 보고 즐거워한다. 그러니 만화를 감상한다는 건 얼마나 인간적인가.


작품 속 두 사람이 오죽 행복해보이면 결혼장려만화라는 수식어가 붙을까 싶지만, 나는 결혼을 해서 두 사람이 행복해진 게 아니라 행복을 잘 준비해온 사람이 결혼을 했다고 바라보는 쪽이다. 결혼해도 똑같다는 말은, 그 전부터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서로를 존중해오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왔고, 결혼이란 게 행복을 좌지우지하는 필수요건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의 일부라는 뜻 아닐까?


그리고 이 부부, 단순히 서로에게만 다정하고 상냥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픔이 있는 강아지 동구를 보살피는 모습이나 명절에 근무 중인 마트 계산원에게 따뜻한 인삿말을 건네는 것을 보고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좋은 사람이라서 사랑도 예쁘게 하는구나. 결혼으로 뜻밖의 행운이 쏟아지길 기대하기보다는 바로 지금 누군가와 행복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먼저여야 하는 거 아닐까 감히 확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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