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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구름 Mar 05. 2021

언제나 음식에 진심인 사람이 되자

오무라이스 잼잼(2010)/조경규/다음 웹툰

민트 초코 호/불호, 파인애플 피자 호/불호. 딱딱한 복숭아 대 물렁한 복숭아, 탕수육 부먹 대 찍먹, 바삭한 시리얼 대 눅눅한 시리얼, 꼬들한 라면 대 퍼진 라면……. 아마 누구나 여기 나열된 주제만 있다면 처음 보는 사람과도 몇 시간이고 대화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애초 답이 없는 이 선택지들을 두고 사람들은 열을 내면서 자신의 입장을 고수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기도 하지. 이런 의미 없는 논쟁은 왜 해도 해도 재미있을까?


내가 왜 이런 음식 취향을 가지게 되었는지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다. 분명한 건 아무리 확고한 취향이라도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절대적인 논리는 없다는 것이다. 타고난 취향이든, 우연한 경험에 의한 것이든 자신이 그 취향을 유지해야 할 객관적인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더욱 취향의 힘은 강력하다.


음식 취향은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데 꽤 상당한 지분을 차지한다. 나만 보더라도 냉면에 식초를 넣어 먹거나 핫도그에 머스터드 소스를 뿌려먹는 나를 상상할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나와 너무 다른 존재이다. 나는 지금의 취향이 참 소중하다. 가끔은 불편함을 동반하기도 하지만 취향에 딱 맞는 식사만큼 안정감을 주고 행복을 선사하는 것도 없다. 생각해보면 모든 사람이 각각 다른 취향을 갖고 있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각자가 행복을 느끼는 방법이 다 다르다는 뜻일 테니.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어쩐지 작가님과 꽤 가까운 사이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고 만다. 정기적으로 만나는 밥 친구가 된 것 같달까? 밥 먹는 것만큼 사람 사귀기 좋은 법도 없는데, 회차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한 기분이 들다 보니 심적 거리가 확 줄어든다. 게다가 작가님의 음식 취향이나 철학이 나와 꽤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더욱 친밀감이 느껴진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위해서는 내가 뭘 먹고 싶어 하는지부터 잘 파악해야 한다. 뭘 먹을지에 대한 고민이 길어지는 건 결국 내가 지금 뭘 먹고 싶어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차가운 것 혹은 따뜻한 것, 국물이 있는 것 혹은 아닌 것, 밥 또는 면 또는 빵, 볶음 또는 찜 아니면 날 것, 이런 조건들을 하나씩 꼽아가며 최적의 메뉴를 찾아가야 한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 라는 질문은 사소한 것 같지만 절대 만만하게 봐선 안 된다. 지난주에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라고 해서 오늘도 맛있을 거란 보장이 없다. 오늘의 기분, 몸 상태, 식사 시간 등 여러 조건이 그때와 같지 않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지금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뭘지 진지하고 열심히 고민해야 한다. 최고의 식사는 결코 거저 얻어지지 않다. 작품 안에서 작가는 단 한 번도 대충 메뉴를 고르지 않았다. 모든 지식을 총동원하여 신중하게 고민한 끝에 가장 적절한 메뉴를 떠올렸다. 매 끼니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이 작품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행복의 비결이 아닐까.


만화 속에는 작가의 음악과 영화 취향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음악과 영화 속에 소재로 쓰인 음식은 작가에게 강렬한 로망을 불러일으킨다. 한 마디로 말하면 '나도 먹고 싶다!'는 욕망이다. 그리고 작가는 외국 여행도 불사하고 그 음식의 본 맛을 느끼러 떠난다. 음식이란 이렇게 위대하다. 그 음식이 아니고선 풀 수 없는 갈증이 있다. 식욕은 생물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다. 하지만 사람은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식사에 만족하지 않는다. 맛없는 음식을 먹으면 아무리 배가 불러도 짜증이 난다. 결국 먹고 싶은 것을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사랑하면 더 알고 싶어 진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작가는 음식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을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독자에게 음식의 유래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준다. 어쩌다 이렇게 맛있는 게 생겨난 걸까, 내지는 어떤 고마운 분이 이런 걸 만들어줬을까, 하는 마음의 발로이다. 어쨌든 그것이 유용한 지식임에는 분명하다. 음식의 변천사를 알게 되면 음식에 더욱 애착이 생기고 한 번이라도 더 그 맛을 음미하게 되는 법이니까.


모든 음식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모습을 바꿔왔다. 세상의 모든 음식의 출생의 비밀을 살펴보면 인류사를 통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않을까. 그렇다면 전쟁사로 인류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것보단 훨씬 산뜻하고 즐거운 방식이 되지 않을까 싶다. 중요한 건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엔 더 맛있게 먹으려는 누군가의 노력이 담뿍 들어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더 나은 먹거리를 위해 애쓰는 분들이 있기에 음식은 변화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눈 앞에 있는 음식에 최선을 다하자. 이 음식 또한 언제 역사의 뒤안길로 남을지 모르는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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