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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구름 Feb 20. 2021

무섭지만 참아볼게요

간 떨어지는 동거(2017)/나/네이버 웹툰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원칙적으론 그렇다. 웬만한 다짐과 각오가 동반되지 않는 이상, 아무리 변화를 꾀해봤자 형상기억합금인 것처럼 금세 원래대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이담은 신우여, 계선우 무려 두 남자를 바꿨다. 두 남자는 오로지 그녀와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났다. 신우여는 구미호에서 사람으로, 계선우는 '핵폐기물급' 인성의 양아치에서 반듯한 남자로.


이담을 만나기 전 두 남자는 이성과 얕고 가벼운 관계만 맺어왔다. 신우여는 정기를 모으기 위해 가리지 않고 여자를 꾀어왔고 계선우는 외모 출중하지, 집안 번듯하지, 머리 좋지, 워낙 좋은 조건으로 태어난지라 여자를 만나는 게 쉬웠다. 이담은 달랐다. 누군가를 함부로 대하지도, 누군가 자신을 함부로 대하게 내버려 두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수작이나 부리려던 두 남자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아버렸다.


사랑에 빠진 사람 치고 운명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것이 확증편향이든 미신이든 지금의 사랑이 절대적이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사람은 알 수 없는 미래 때문에 늘 불안해하고 그렇기 때문에 강력한 확실성에 끌리곤 한다. 사랑도 예외는 아니다. 연인과 나 사이에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것만큼 마음을 안정시키는 게 또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운명으로 맺어진 관계를 다른 관계보다 우위에 두는 것에 익숙하다. 그것이 낭만이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알게 모르게 학습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보면 실제로 그러한가 의심을 품어봄직하다. 이담은 빨간 실로 엮인 계우선이 아니라 신우여를 택했다. 운명이 신우여를 끌어당길 때마다 적극적으로 그를 밀쳐냈다. 그래서 작품의 로맨스가 조금이라도 훼손되었는가? 오히려 이담과 신우여 사이의 애틋함이 강화되는 효과를 주었다. 작가는 운명을 이담이 스스로 넘어서야 하는 장애물로 사용했고, 그로 인해 그녀로 하여금 불안을 다루는 법을 깨닫게 했다. 여기서 혜선이 이담에게 한 말을 떠올려보자.


"곰이고 호랑이고 여우고, 왜 다들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지 알아? 인간만이 유일하게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거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연인이 되었다고 해도 두 사람의 마음이 마냥 편할 수만은 없다. 지금은 손을 맞잡고 있지만 내가 힘을 푸는 순간 상대가 손을 놓아버릴지 아님 여전히 잡고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상대가 나를 좋아하는 것보다 내가 상대를 좋아하는 마음이 더 크다는 확신이 있다면 더욱이.


신우여는 이담이 떠날까 봐 겉으로는 계속 '좋은 사람' 흉내를 내며 뒤에서는 서영주 교수에게서 정기를 흡수한다. 이담에게 떳떳해지기 위해 하루빨리 사람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이담은 그에게 이별을 고한다. 이담은 솔직히 인정한다. 가끔은 당신이 무섭다고. 연애인지 호러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함께 하고 싶었다고. 결국 신우여의 행동은 이런 이담의 각오를 무색하게 만들어버렸고 그녀의 노력을 무위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두 사람은 어쩌다 어긋나 버린 걸까. 애초 시작부터 둘 사이에는 입장 차이가 존재했다. 신우여는 이담이 자신에게 너무 아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스스로 을을 자처한 것이다. 언뜻 헌신적인 태도로 보이지만 연인관계에서 이는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연애란 건 서로를 관계의 동행자로 받아들이는 일인데, 둘 사이에 책임의 불균형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담은 무슨 일이든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려고 했지만 신우여는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했다. 신우여가 어쩔 수 없이 사람의 정기를 흡수하는 일을 이담은 '우리의 문제'로 여겼지만 신우여는 '자신의 문제'로 국한하여 생각했다. 그래서 일방적인 결정과 행동이 나올 수밖에 없었고 이담은 그가 온전히 자신을 믿지 않는다는 배신감을 느껴야 했다.


이담은 앞뒤 가리지 않고 불나방처럼 사랑에 뛰어들지 않았다. 신우여가 자신의 정기를 흡수하게 된 걸 안 뒤 그와 거리를 두었고, 그가 서영주 교수를 위험에 빠뜨리자 바로 연인 관계를 포기했다. 그녀는 가족, 친구, 꿈과 미래를 생각할 줄 알았다. 진심을 다해 신우여를 사랑하면서 말이다.


반면 신우여에겐 이담이 전부였다. 사랑이 시작되면서 그녀가 삶의 기준이 되었다. 그에겐 이담을 잃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일이었다. 도덕심이라곤 전혀 없는 그는 다른 누군가의 안위보다 그녀를 지키는 것이 먼저였고, 그러한 선택으로 이담에게 겁을 주었다.


눈먼 사랑이라고 결코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맹목적인 사랑이 오히려 관계를 망가뜨린다. 그렇다고 쉽게 사랑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물론 사랑을 위해 기꺼이 희생해야 하는 것도 생길 테고 경우에 따라 감수해야 할 위험이 따를 수도 있다. 다만 사랑 하나만 보고 모든 걸 내던진다고 여타의 사랑보다 우월해지거나 순도가 높아지는 게 아니다. 꼭 자기를 파괴해가며 사랑의 진실성을 증명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중요한 건 최고의 선택을 찾기 위한 고민이다. 애초 사랑에는 정답이 없다. 매 순간 고민이 동반되는 각자의 선택만 있을 뿐.


작가는 신우여의 대사를 통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구절을 인용한다. '사랑에는 언제나 약간의 망상이 담겨 있다. 그러나 망상 속에는 언제나 약간의 이성이 깃들어 있다.' 신우여와 이담의 사랑이야말로 딱 이러했다. 이담은 자신이 본 모습만 믿고 무작정 신우여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가, 그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하며 자신이 그를 좋아했기 때문에 좋은 사람이길 바랐던 것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이담은 그가 선해지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을 뿐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지식은 갖추고 있음을 발견한다. 신우여는 이담과의 약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차츰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간다. 그리고 마침내 구슬이 완전히 푸른빛으로 뒤덮이며 완벽한 인간이 된다. 결론적으로 이담이 처음 신우여에게 가졌던 기대는 호감이 빚어낸 오해이면서 또 어느 정도의 옳은 이해였다.


좋아하는 마음은 완벽한 이해에서 싹트지 않는다. 꼭 상대가 아니라 자신에 한해서도 그렇다. 신우여는 단지 정기를 모을 목적으로 이담과 동거를 시작하며 다정함을 가장했지만 결과를 보라. 그는 그녀의 눈에 들기 위해 매 순간 애태우며 자발적으로 다정한 사람으로 변모해갔다. 이담 또한 숱한 과거의 여자들 중 하나일 거라고 넘겨짚은 자체가 그의 오만이었던 것이다. 이담이 당신은 나에게 중요하고 특별한 사람이라고 속마음을 털어놓았을 때 신우여는 순순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당신도 그저 지나가는 소나기였다고. 그런데 아직까지 이렇게 맞고 있다고.


어쩌면 호감이라는 감정 자체가 적당한 무지에서만 싹틀 수 있는 감정인지 모른다. 그 마음이 얼마나 진실된 출처에서 생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니, 특별한 마음이 생기고 나서야 실제 그것이 착각이었는지 아녔는지 비로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대신 조건이 있다. 무조건 솔직해야 한다. 만약 이담이 솔직함으로 무장하고 겁 없이 들이대지 않았다면 신우여는 끝까지 본심을 숨기고 자꾸 달아나기만 했을 것이다. 변화를 이끌어내는 건 늘 솔직함이다. 제멋대로 떠나버린 신우여 앞에서 진심 어린 눈물을 흘리며 이담이 한 말을 돌이켜보자.  '좋아해요. 좋아해 주세요.' 이보다 더 간결하고 완벽한 고백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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