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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구름 Apr 12. 2021

독서, 어렵지 않아요

익명의 독서중독자들(2018)/이창현,유희/다음 웹툰

"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강유원, 『책과 세계』


나는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좋아하지 않는다. 책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내 흥미를 유발하는 소재나 주제가 무척 협소하기 때문이고(책의 문제가 아니라 내 취향의 문제이다), 애독가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경험한 바 그들은 독서에 무심한 자들을 다소 무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수시로 유식한 정보를 줄줄 내뱉을 때, 사고의 깊이가 남다른 견해를 드러낼 때, 어쩔 수 없이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그렇다고 책을 가까이하려고 하면 잘 되지 않았다. 늘 의무감으로 책을 읽으려 시도했다가 실패한 경험 때문에 이미 책과 사이가 나빠질 대로 나빠졌다.


독서 모임이나 소설 강좌를 부지런히 찾아다닌 적이 있다. 소위 글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책에도 계급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일단 자기 개발서는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어떤 모임을 가더라도 좋아하는 책이 뭐냐고 물었을 때 자기 개발서의 제목을 대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오히려 자기 개발서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실을 개탄하고 그러한 책을 즐기는 사람들을 한심해하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그와 비슷한 취급을 받는 책이 일명 감성 에세이다. 특히 순문학에 종사하는 자들은 딱 SNS에나 올릴 수준의 글이라며 대놓고 비웃는다. 문학 자체를 통틀어 비하하는 사람도 있다. 지식의 양과 질을 따졌을 때 문학보다는 역사나 정치 서적이 훨씬 유익하다고 보는 사람들이다. 도대체 문학이 왜 존재하는지 모르겠다며 문학의 가치에 의구심을 갖는 극단적인 생각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조차 조용히 만들 수 있는 책이 있다. 바로 철학서이다. 철학서를 즐겨 읽는다고 하면 그 누구도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예전에 '문사철'이라고 해서 글을 쓰고 싶다면 문학, 역사, 철학에 두루 능통해야 한다는 무척 부담스러운 조언을 들었는데, 설마 그 순서에 등급이 내포되어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작품 속 책 모임 회원들은 그냥 책을 사랑하는 게 아니다. 모두 책에 중독된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지 않는다. 나름대로 선별 방법이 있다. 가령 책날개를 보고 저자 소개가 명료하지 않다거나 목차에 담긴 내용이 불분명하면 바로 거른다. 독서에 능통한 사람이야 이렇듯 좋은 책을 선별하는 요령이 있지만 나처럼 경험이 일천한 사람은 어떤 책을 읽을지 고르는 독서의 첫 단계부터 막막해진다. 요새는 표지 디자인을 다들 멋들어지게 뽑아놔서 죄다 '좋은 책'처럼 보이는 것도 문제(?)다.


그래도 나만의 원칙이 있긴 있다. 서점에서 전면적으로 내세우는 책은 제외한다. 베스트셀러도 제외한다. 인기을 좇는 게 수준이나 품격이 낮다는 관점은 절대 아니다. 명작을 결정하는 데 대중의 선택이 큰 몫을 차지한다는 걸 인정한다. 다만 그동안 다수의 선택을 따랐을 때 결과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을 뿐이다. 영화나 음악, 음식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제 누군가의 추천을 받아서 선택하는 것은 거의 포기했다. 그러고 보니 '인생 책'을 발굴한 과정을 되돌아보면 순전히 우연이었다. 서점에서 책등만 보고서 아무거나 쑥 뽑았다가 홀라당 빠져버린 것이다. 하긴 현존하는 책이 얼마나 많은데, 누군가에게 최고의 책이 나에게도 최고가 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차라리 무작위로 아무 책이나 고르는 게 선택의 폭을 더 넓혀주는 게 아닐까.


나름 이 책 저 책 들여다보면서 느낀 점은 이렇다. 필독서에 너무 신경 쓰지 말자. 물론 학구적이고 권위 있는 분들이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만들어놓은 목록이겠지만, 일단 '필'이라는 말이 붙자마자 독서가 부담스러워진다. 그리고 필독서는 어느 정도 그 분야에 조예가 깊은 사람을 대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 안에 나와 잘 맞는 책이 꼭 껴 있으리란 보장이 없다. 독서가 편해지려면 책이 철저히 '취향'을 타는 영역이라는 것을 분명히 전제하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 그렇 않으면 허영에 가득 찬 어쭙잖은 속물이 기 딱 좋다.


본 작품 속에서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 괜히 인용된 것이 아니다. 누군가 한 번에 알아듣기도 어려운 외국어 저자가 집필한 어려워 보이는 책 제목을 대며 어쩌고 저쩌고 늘어놓을 때 그 앞에서 순순히 '난 그거 안 읽어봤는데'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세상이 명작이라고 분류한 책일수록 더욱 그렇다. 사실 어떤 책을 읽지 않았음을 부끄러워할 이유는 전혀 없다. 세상에 '꼭' 읽어야 하는 책이 과연 존재할까? 차라리 꼭 읽어야 할 책은 이미 읽었다는 태도가 독서 활동을 넓히는 데에 도움이 될 거라고 장담한다.


"베스트셀러를 '내 독서 목록'의 기준으로 삼긴 힘들죠. 아무래도 '그때그때의 인기 있는 책'이다 보니 무맥락적인 '읽어야 할 신작 목록'만 늘어날 테니까요."
"더 중요한 이야기가 있지. '지적 배경'이나 '취향'이 저마다 다른 다수의 사람이 동시에 즐기고 공감한 책......? 과연 그런 책에 무슨 내용이 담겨 있을까?"
-10화 중
"독서 중독자들은 완독에 대한 집착이 없어."
"흠, 지금껏 읽은 책 중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책은 20%도 안 될 것 같군."

"내가 산 책, 내가 원하는 부분만 읽겠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나."
"오히려 고지식하게 억지로 완독 하려다, 아예 책을 멀리하게 될 수도 있어요."
-12화 중


처음에 했던 말을 번복하겠다. 나는 책을 좋아한다. 이 문장엔 생략되어 있는 구절이 있다. 나는 (이러이러한) 책을 좋아한다. 내겐 몇 번이고 다시 읽고 싶은 책들이 있다. 하지만 이 극소수의 책들을 제외하고는 독서가 퍽 지루하다. 그래서 누군가 "책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면 대답하기가 곤란하다. 이런 포괄적인 질문은 마치 "사람 좋아하세요?" 같은 질문으로 들린다. 내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내가 인류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활자 중독자가 아니고선 독서 행위에서 쾌락을 느끼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중요한 건 독서 행위를 통해 접하는 내용이다. 영화나 음악, 미술도 마찬가지다. 이 시대에 몇 안 되는 장점이 다양한 형식의 문화를 부담되지 않는 가격으로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독서가 싫다면 어디서든 당당하게 고백하자. 나와 가장 잘 맞는 감성 또는 내게 필요한 지식은 어느 장르에서 어떤 형태로든 있을 테니까.


답은 고전이 보여주는 자아들을 자기 몸에 넣어보고, 다시 빠져나와보고, 다시 또 다른 것을 넣어보고, 또다시 빠져나와본 다음에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무의미한 일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얻어질 자아가 과연 진정한 것인지 확인할 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예 텍스트를 손에 잡지 말아야 하는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사실." -강유원, 『책과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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