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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구름 May 05. 2021

새로운 설정 속 낯익은 비애

행성인간(2019)/조석/네이버웹툰

행성인간의 내부에는 혈액 세포의 외형을 한 존재가 문명을 이루며 살아간다. 자아가 있는 그들은 '문명을 끌어올리는 게 본능인' 존재라서 오로지 발전을 향해 내달리며 행성인간을 급속도로 소모하고, 그로 인해 행성인간은 20년의 수명밖에 누리지 못한다. 행성인간인 황지는 그중에서도 특별한 존재였다. 그의 피를 수혈받은 일반인은 행성인간이 되었고, 만약 수혈의 대상이 멸망해가는 행성인간이라면 문명이 재생될 정도로 그의 피는 이례적이고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다. 그리하여 황지는 그의 능력을 노리는 여타의 행성인간들의 표적이 되고 생존을 건 치열한 결투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행성인간의 공격성은 그들의 생존 방식에서 기인한다. 행성인간은 행성인간의 피를 흡수해야만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다. 먹이 사슬의 생태계가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동족 살인만으로 유지되는 체계이다. 그리고 행성동물인 돌고래는 행성인간을 삼키면 그자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조건은 행성인간 혹은 행성동물이 서로 적대하도록 만든다.


행성인간 속 존재들은 문명을 발전시키고 확장하는 데에 맹목적으로 임한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문명의 터전인 행성인간의 생존이 우선이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건 오히려 문명의 야만성이다. 황지가 감당해야 하는 행성인간으로서의 고달픈 운명은 싸우는 게 일상이 된다는 점이다. 본 작품은 재앙을 불현듯 닥친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삶 그 자체로 그려낸다. 다시 말해서 재앙이란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파괴하는 존재가 아니라 애초에 삶과 동시에 시작되는, 어쩌면 생명의 잉태와 동시에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황지가 특별한 이유는 행성인간에게서 태어난 행성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는 행성인간들 사이에서 유일한 사례이다. 황지가 다른 행성인간들과 달리 '인간성'을 갖게 된 것 또한 그의 엄마인 미은과 관련이 있다. 미은은 황지가 본인이 행성인간임을 자각할 때마다 그의 안에 있는 존재를 시켜 기억을 묶어버렸고, 기억을 잃은 황지는 본인이 이상한 존재라는 것만 어렴풋이 짐작할 뿐 평범한 인간으로서 일상을 이어간다. 중요한 건 엄마로부터 받은 보호와 사랑으로 인해 황지가 누군가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을 배우게 되는 점이다. 황지는 그런 면에서 다른 행성인간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위치에 서 있다.


황지는 일련의 사건을 겪은 후 머릿속에 수많은 기억이 묶여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기억마다 다른 자아가 생겼음을 알게 된다. 그는 '나'에 대한 주도권을 갖기 위해 본인보다 존재감이 약한 기억을 본인의 것으로 흡수해 나간다. 그러다 본인이 미은의 몸속 존재와 결합한 채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본인 안에 존재하는 무수한 '나'가 누구인지에 대해 혼란을 느낀다. 그때 미은은 그에게 다정한 손길을 건네며 분명히 말한다. 네가 누구 건 어떤 모습을 하건 모두 내 아들이라고.


이처럼 미은의 존재는 황지가 정체성을 형성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관성, 즉 공통된 성질이 필요했는데, 나이 별로 다른 능력, 다른 성격을 갖고 있었던 황지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미은에게서 태어났다'라는 변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쯤에서 '출생'의 의미를 한 번 되짚어보자. 출생은 생명에서 또 다른 생명이 나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생명의 나눔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는 다른 행성인간의 특성과 명백히 대비된다. 행성인간에게 다른 행성인간은 빼앗아야 할 자원이고 흡수해야 할 대상이다. 쉽게 말하면 다른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그들의 당연한 사고 원리이다.


한편 행성인간 속 존재가 황지를 바라보는 태도는 점점 격하되는데, 처음엔 신으로 그러다 자애로운 아버지로, 그다음엔 단련해야 할 존재로, 결국엔 점령의 대상까지 추락한다. 심지어 황지는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네 개의 아이로 분열되어 버린다. 그중 한 황지는 그의 태아 시절 융합되었던, 미은 속에 살던 외눈이였다. 외눈이는 본인이 행성인간인 황지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고 본인 자체가 행성이 되려고 작정한다. 더 완벽한 존재가 불완전한 존재의 우위에 선다는 게 외눈이의 논리였다.


그의 논리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하다. 하지만 독자는 그에게 설득되지 않는다. 힘의 우열을 따지자면 외눈이를 따라야 하지만 독자로서는 황지의 가족의 편에 서게 된다. 만약 인류가 문명의 흥망성쇠에 적용되는 힘의 논리로만 살아간다면 이런 태도는 있을 수 없다. 분명 사람에겐 약육강식 그 너머의 바람이 있다.


황지 가족의 행적을 한 번 살펴보자. 황지는 성연이 백혈병으로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본인의 피를 나눠주어 그의 수명을 연장한다. 성연은 사육장에 갇혀 정체불명의 대상의 먹이 신세가 되었을 때 그곳에 갇힌 드라니를 치료하고 함께 탈출한다. 미연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황지를 위험하게 만드는 존재를 가차 없이 제거해버린다. 이렇듯 세 사람이 타인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는 예시는 얼마든지 나열할 수 있다.


행성인간을 자각하기 전 황지는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다. 심지어 숨이 끊어져 땅에 묻히기까지 한다. 그때 행성을 지키려는 몸속 존재가 과거의 본능을 일깨우고 그는 신체를 재조립할 수 있는 전투형 인간으로 각성하게 된다. 황지에게 이입해온 독자로서 그 순간만큼은 행성인간의 능력을 우호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외눈이가 철저히 본인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한 일이었다 하더라도 어쨌든 그로 인해 황지 또한 살 수 있었으니까.


그러다 외눈이가 황지를 통째로 차지하기 위해 나서는 순간을 맞닥뜨리면 독자는 초반의 태도를 복잡한 심경으로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함부로 그런 힘을 긍정하게 했던 황지의 처지를 또 다른 시선으로 응시하게 된다. 수없이 기억을 지워가며 어떻게든 평범한 사람으로 살려고 했던 황지에게, 행성인간의 능력을 쓸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 우리의 현실이, 사랑을 나누며 살기보다는 전투를 사명으로 여기는 행성인간에게 최적화되어 있는 세상이라는 걸 씁쓸한 마음으로 인정하고 나면 행성인간의 운명이 더는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성연이 새로운 힘을 조절하지 못해 파괴될 위험에 처했을 때 미은이 그를 껴안으며 이렇게 말하자 그는 금방 진정한다. "엄마 왔어. 이제 괜찮아." 전투력이 상당한 일곱 살 자아가 깨어난 황지가 사라졌을 때도 미은은 그의 힘을 믿고 안심한 게 아니라 겨우 일곱 살짜리 마음을 지닌 아이일 뿐이라며 그를 찾으러 나선다. 이러한 장면과 대사가 울림을 주는 건 그 속에 우리가 공통으로 품고 있는 안타까운 소망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힘과 힘이 격돌하는 잔인한 세상 속에서, 사람들의 기대는 내가 가장 강한 존재가 되어 세상을 평정하기보다는 힘과 무관하게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여 주는 존재의 발견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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