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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구름 May 15. 2021

중력을 거스르는 능력보다 특별한 해맑은 미소

반중력소녀(2020)/겨울/네이버웹툰

별이의 탄생은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는 사건이었다. 갓난아이가 공중에 떠 있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녀에게 온갖 관심을 쏟아부었고 학계에서는 그녀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연구진은 그녀를 반중력소녀(Anti-Gravity Girl)로 명명하고 반영구 에너지원을 추출하기 위해 각종 실험을 이어간다. 이렇듯 별이는 태어날 때부터 실험체 취급을 받으며 평생을 연구소 안에서 지냈다. 아무도 그녀를 인격체로 여기지 않았다. 연구진의 시선에서 그녀의 성격이나 취향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들이 집중한 것은 오로지 중력을 거스를 수 있다는 기능적 자질이었다.


별이는 활발하고 명랑하고 순수한 소녀이다.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른 특성이 있다고 한들, 그녀는 전혀 위협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구성원들이 그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그녀는 언제라도 공동체 생활을 무리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별이가 받는 대우는 사실 우리 사회가 이방인이라고 규정한 사람들을 다루는 방식과 일맥상통한다. 별이가 혐오나 탄압의 존재가 되지 않은 것은 그녀의 능력이 인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만약 별이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그저 독특하고 눈에 거슬리는 존재였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작품 속에는 그녀의 능력을 둘러싼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과학자들의 시선이다. 그들에게 별이의 능력은 일종의 자원이다. 예컨대 별이가 사라졌을 때, 강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그 애에게 무슨 일이 있을 시엔 국가적인 손실을 입는 겁니다." 두 번째는 별이 자신의 시선이다. 과학적으로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중요하건 간에 그녀는 위대해지고자 하는 욕심 자체가 없다. 그녀에게 공중 부양은 그저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가끔 자신을 난처하게 만드는 능력일 뿐이다. 이러한 비교에서 알 수 있는 건 공중에 뜰 수 있는 능력이 얼핏 대단해 보이고 엄청나 보이지만 정작 윤별이라는 사람을 '인간적으로' 설명하기에는 상당히 부적절하다는 점이다. 오히려 별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 능력을 제외하고 설명하는 편이 낫다.


어릴 때부터 연구소에 머물렀던 별이에게는 단 한 명의 친구가 있었다. 그녀를 연구하는 정 박사의 아들 은후이다. 하지만 그를 친구로 생각한 건 별이일 뿐, 은후는 연구에 매진하느라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아버지에게 섭섭함을 느끼며 동시에 별이를 친구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별이가 자신을 유일한 친구로 여기고 있다는 말을 듣고 서서히 마음을 바꿔간다. 아버지의 관심을 독차지한 그녀가 마냥 행복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 돌봄이 필요한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은후는 별이를 (귀찮아하긴 하지만) 실험체가 아닌 인격체로 대한다. 은후가 본인을 걱정할 때마다 별이의 기분이 좋아 보인 것을 생각하면 연구실에서는 그녀가 철저히 실험 대상으로 관리되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은후는 연구실 박사들과 달랐다. 아버지가 그녀의 학교생활을 감시해달라고 부탁하자 그래도 되는 거냐고 반문하며 자신이 그 애라면 기분이 상할 거라고 대답한다. 은후에게 별이는 평범한 열일곱 살이었다.


사람들은 특별하거나 평범하거나 둘 중 하나로 누군가를 평가한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정말 누구에게나 평범한 면모와 특별한 면모가 동시에 존재한다. 누군가는 별이처럼 특별함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서 평범함이 눈에 띄지 않을 수 있고, 누군가는 한없이 평범해 보이면서 속에는 특별함이 있을 수 있다.


사실 별이가 신비한 능력을 갖추고 태어났다고 해서 꼭 국가에 이바지해야 한다거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힘써야 하는 사명을 짊어질 필요는 없다. 특히나 삶에 주도권을 빼앗기는 조건에서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연구소 사람들은 별이에게 자유와 선택을 허락하지 않은 채 실험을 이어간다. 특히 별이가 본인의 능력을 통제하지 못해 높이 떠오른 채 내려오지 못했을 때 보인 강 박사와 정 박사의  반응은 냉정할 정도이다. 별이에게는 그것이 위험하고 불안한 현상이었지만, 두 박사는 별이에게 좀 더 강한 힘을 뽑아낼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며 그것을 기쁜 성과로 받아들인다.


별이는 감정 상태에 따라 높이 떠오르기도 하고 낮게 가라앉기도 한다. 그 때문에 정 박사는 별이에게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라고 당부한다. 별이가 은후를 좋아하게 되면서 둘 관계가 직접 능력에 영향을 주게 된 뒤로는 서로 거리를 둘 것을 경고받는다. 하지만 일상생활을 하면서 감정 변화가 일어나는 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감정 변화가 심하면 위험하다느니, 은후가 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느니 하는 말은 사실 정반대로 해석해야 옳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감정에 무뎌지는 것이야말로 위험한 일이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그전에 결코 느끼지 못한 성숙한 감정을 이끌어낸다. 실질적으로 별이가 실험실 안에서 통제받은 것은 그녀의 능력이 아니라 감정이었다.


아뇨. 혼자 살아야 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으로 인류가 보다 발전된 길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럴 수 있다면, 그게 가능하다면 그 아이는 그것을 위해 태어난 것. 마땅히 주어진 인생을 살아야 한다…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53화 중, 양박사의 말


양 박사는 별이를 사회에 적응할 수 없는 존재로 규정한다. 그리고 학교에 가고 싶어 하는 별이의 마음을 다음과 같은 말로 무참히 짓밟아버린다. "애들한테 피해를 줄 거라고 했지? 너 하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지는 거야." 같은 반 친구 수연이 별이로 오인되어 납치를 당하고, 떠오르는 힘을 통제할 수 없어 은후가 그녀를 구하려다 추락한 사건이 있던 터라 별이는 그 말을 듣고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양 박사는 그녀에게 '모두를 위한 길'을 생각해보라고 했고 그렇게 생각해보면 별이가 학교에 가는 일에 죄책감을 느끼는 건 정해진 수순이다. 하지만 별이가 '자신을 위한 길'을 생각하면 답이 달라진다. 은후는 별이가 자책하는 것을 듣고서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친구들은 네 옆에 있는 게 좋을 수도 있다고. 우리가 괜찮으면 그만 아니냐고. 그리고 그에 앞서 무심하게 중요한 말을 툭 던진다. 자기를 쫓아다니지 말라고 할 때는 그렇게 안 듣더니 왜 이번에는 박사님 말을 그대로 따르려고 하냐고.


양 박사는 별이를 보물이라 일컬으며 반중력을 적극 연구해서 과학계에 눈부신 발전을 이룩해야 한다는 확고한 태도를 보인다. 보물이란 말은 언뜻 별이를 아끼고 소중히 생각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진실은 그와 달랐다. 보물이란 결국 누군가에게 소속되어 영원토록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에 불과하다. 별이가 원한 것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별이가 의식을 잃고 깊은 잠에 빠졌을 때 그녀가 꾼 꿈은 '걸어 다니는 자신'이었다.


은후는 별이를 깨우기 위해 그녀의 꿈속에 들어가서 떠다니나 걸어 다니나 그게 그거고 자신에게 그건 사소한 문제라고 잘라 말한다. 그리고 별이가 떠다니지 않았다면, 자신 말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더 있었다면, 자신과는 아예 인연이 없었을 수도 있었을 거라고, 지금의 너를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별이가 떠다니는 건 은후에게  친구가 된 계기, 딱 그 정도의 의미였다. 이것이야말로 그녀의 능력이 그녀 본인을 위해 쓰인 유일한 일이 아닐까 싶다. 고립된 채 대단한 존재가 되기보다는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평범함을 원했던 그녀의 소망이 한없이 애틋해지는 건, 그 소망을 이룰 수 있는 건 그녀가 아니라 그녀를 제외한 모두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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