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리두리하나 Jan 23. 2016

아이의 체벌은 신이 금지한 범죄

훈육이라는 이름의 체벌은 비극의 시작

아이를 처음 가졌을때 가장 아름다운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라면서 점점 아기는 아이로 성장하고 처음 보는 세상에 대해 아직 버릇이라는것과 질서라는 부분을 모르고 자라게 된다. 그가운데 아이들을 육아 하는 엄마들은 육아를 하면서 가끔 체벌의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신이 아이를 주셨다면 신이 금지한 범죄가 체벌이다. 신은 아이에게 사랑 받을 권리만 주셨다. 아이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고 사랑받기 위한 투정이다. 


체벌은 비극의 시작

육아를 하면서 가장 잃어버리기 쉬운것이 기다림이다. 기다림을 배우지 못한 엄마들은 이성을 잃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시작하는 체벌은 비극의 시작이 된다.


이것은 많은 사건으로 알수 있다. 육아중 가장 쉽게 할수 있는것이 체벌이다. 아이가 몰라서 알면서도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아서 엄마를 힘들게 할때가 있다. 이때 엄마는 갈수로 힘들어 한다. 그런데 어느순간 한번씩 체벌을 하게 되고 그게 발단이 되어서 체벌의 강도가 점점 높아 지는것이다.


사실 체벌을 시작해 버리면 멈춰지지 않는다. 절대 해서는 안되는 행동중에 하나가 체벌이다. 

우리 사회는 체벌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체벌을 했을때와 하지 않았을때 달라지는것이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만큼 육아의 효과가 큰것인지 아닌지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체벌의 효과는 검증되지 않았다. 다만 체벌을 하면 빨리 버릇을 고친다고만 알고 있다. 가장 문제는 여기서 시작이다. 체벌이 필요하다는 사회적인 분위기부터이다. 

체벌은 모든 비극의 시작이다.




체벌이 효과가 있을까?

체벌이 효과가 있을까 아이가 잘못한것을 인지하지도 못한체 체벌이라는 폭력을 맞이하면 두려움이 생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폭력에 대한 방법론을 아이가 기억하게 된다. 


아이가 자라면서 기다림을 배우고 질서를 배울수 있는 시간이 있었던가를 생각해 보면된다. 

가장 화가 났을때는 한번이야기 하면 들어라는것이다. 그건 어른들 세계에서도 자기의 이야기를 한번 한건 좀 들어라고 한다. 어른들도 그말에 대해 동의 하지 못한다. 모조건 엄마가 이야기 하는것은 한번 이야기 하면 듣고 기억하라는 식이다.


이런 교육 방법은 과거 서당에서도 없었다. 그냥 엄마가 두번 세번 이야기 하는게 힘드니깐 한번 이야기 하면 들어가는 씩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두번 세번 반복해야 인식한다. 그런데 그게 지쳐 가는것이다. 대한민국이 여유가 없는것은 맞다. 그동안 여유가 없었고 사람 관계에 대해서도 기선을 잡아야되고 직장에서는 처세를 해야 한다는것 일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그게 대한민국을 지금과 같이 망국으로 만들었다고 할수 있다. 


군대식이다. 군대가면 한번 읽어 주고 폭행후 다시 검사한다. 그렇게 개나 돼지 처럼 배운다. 그래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군대였다.


선임 이름을 100명 종이에 적어주고 10분뒤에 와서 얼굴도 모르는 선임을 데리고 와서 이름을 맞추라고 한다. 그렇게 폭행을 반복한다. 그리고 나중에 그것을 체벌에 의한 성과라고 한다. 


대한민국 군대라서 생기는 폭행이고 그게 사회 나와서도 연장된다. 선임에 대해서는 만만하게 하면 안되고 자기가 만만하게 보여서는 안되고 시키면 자기가 해야 할일인지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하고 시키면 시킨데로 하라고 하는게 우리 사회이다. 그것을 육아에 적용하고 있다는것이다. 그것도 적당한 체벌은 필요하다는 식으로 합리화 하면서 ...


태어나서 겨우 4~5년 무엇을 알수 있는 나이도 아니고 세상의 모든것을 흡수하는 나이인데 , 이 때 시키는것 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것에 대한 욕구, 그리고 만지고 싶은 욕구 , 빨리 가지고 싶은 욕구가 강한것은 당연한 신생아의 모습인데 그것을 답답해 한다. 

그렇게 시작하는 체벌


그것을 엄마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다 엄마의 이야기 보다 먼저 보이는것과 만지는것 그리고 생각하는것을 말하는 욕구가 아직은 강해서 그렇다. 그 순서를 알기 까지는 반복적인 교육이 필요한데 그과정을 뛰어 넘기 위해 체벌을 한다.



체벌에 대한 후회 갈수록 무감각

체벌을 처음할때는 밤세 마음아프다. 하지만 갈수록 그게 무감각해지고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맞고 자라면 그 아이는 결국 폭력에 대해 당연한 것으로 알게 된다.


키즈 카페의 일이다. 남자 4세 아이가  놀면서 옆에서 기어 가고 있는 이제 돌아 안되는 아이를 향해 발로 차려고 했다. 그 옆에 그 남자 아이의 엄마는 보고만 있고 친구와 수다 떨고 있었다. 애기 엄마는 놀라서 애기를 감싸 안았다.

그순간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충격에 빠졌다. 그런데 그옆에 남자 아이의 엄마는 아무일도 아닌냥 그냥 두고 친구와 수다 떨고 있었다. 


그 엄마는 폭력에 대해 무감각해 있다는 뜻이다. 자신의 아이가 남의 유아를 발로 걷어 찰려고 했는데 어떠한 훈육도 없었다. 그냥 보고 친구와 수다 떨고 있는 엄마를 보면서 이 남자 아이는 평소에 체벌을 통해 배웠고 항상 자신에게 귀찮거나 걸리는 건 폭행으로 해결한다는것을 알았다.


엄마가 엄하게 훈육해야 한다. 그런데 그 엄마의 체벌은 그 아이가 자신에게 힘들게 할때만 유효한 체벌이다. 그리고 자신이 편하게 친구와 이야기할때 아이의 잘못은 자신과 관계없기 때문에 훈육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깐 엄마는 자기 편리를 위한 체벌을 했던것이다.


그순간 나는 당황했고 다시 그 아기에게 그 남자 아이가 가는것에 대해 계속 신경 쓰고 있었다. 다시 그런일이 있으면 나라도 막지 않으면 아기가 다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는 키즈카페 곳곳에서 이런 저런 소동과 장난감을 빼았는등 제대로 된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 엄마는 그옆에서 그대로 방치하고 있었다. 체벌이 전혀 훈육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아이에게서 나타나는 증거 엄마의 말을 듣지않으면 맞는다. 나도 내 마음에 안들면 때려도 된다. 때려도 엄마가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방법이 옳바른 방법이다. 이렇게 알고 있다는것이다.


친구와 노는것도 폭력이 먼저였고 나중에 보니깐 엄마가 그 남자 아이를 나가자고 할때 말을 듣지 않으니 체벌을 하는것을 봤다. 다른 유아를 폭행하려고 했을때는 그냥 방치하던 엄마가 자신이 집에 가야 되는데 말을 듣지 않을때는 체벌을 하는것이다.


체벌은 갈수록 무감각 하게 만든다. 체벌하는 자신과 체벌을 당하는 자식까지도 무감각하게 만든다. 당연히 폭행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체벌의 시작은 비극의 시작이라는 이야기 이다.


물론 엄마도 힘들고 말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체벌은 끝까지 아니다. 

체벌은 폭행이다. 엄마가 힘든것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체벌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것은 잘못된 관행이다. 체벌은 마지막 까지도 해서는 안될 일이고 있어서는 안될일이다.


우리가 동물을 길들이기 할때 체벌을 한다. 자기 자식도 똑같이 생각한다면 체벌은 어쩔수 없는 현실이 아니고 내 인내가 여기 까지라는것과 그럼 다른 교육 방법을 찾아야 함에도 체벌을 선택한다. 그순간 자신의 아기를 가축을 훈련시키는것과 같아 진다는것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무조건 참으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른 대안이 여러가지 방법들이 있다. 그 대안을 찾는게 우선이라는 이야기이다. 아이들 교육하는 전문 교육 프로그램이나 기관들이 있다는 점도 엄마들이 이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잘모르고 또한 그것보다 체벌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사찰이나 교회 같은 곳의 학교 같은곳도 좋은 훈련 방법이다. 해보지 않고 안될것이다. 또는 그기 참여할 시간이 없다는 이야기도 하지만 자신의 적어도 아이라는 점을 우선 생각해야 한다.


아이는 두번 세번 반복적인 교육으로 깨어가야 된다는 점인다. 그 여런 껍질을 체벌로 깨어 버리면 속살까지 아파한다는 점을 이야기 하고 싶다. 아이들의 교육은 한껍질씩 벗겨 내면서 이 아이의 속살이 드러나면서 아파한다는 점이다. 반복 하면 할수록 아이는 새로운 살이 생기고 또 그 속살이 아파 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 줬으면 합니다. 체벌은 한번에 알의 껍질을 벗겨 내는 것이다. 물론 잘 깨지지만 그 속의 속살은 너무나 아파하고 평생 그 기억을 가져고 한다. 아울러 자라면서 다음번 껍질은 더 강한 강도로 깨어야 된다는 점이다. 


요즘 아동폭력과도 관계가 깊다.

최근 몇년을 보면 아동 폭력으로 의해 사망하는 사고가 연일 보도 되고 있다. 미디어가 발전한면서 그 소식이 빨리 알려 지는 점도 있겠지만 , 그간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이 들어 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사회가 가장을 보호하지 못하고 가장에서는 가장 약한 아이나 노인들이 희생되는 현상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이런 문제가 있고 다들 인정한다. 


하지만 대통령은 옛날 부모들은 10명도 키웠다는 식으로 지금 상황을 감당하라고 하지만 힘든것도 사실이다. 감당할수 없을 정도의 사회 스트레스가 가장으로 모여 노인이나 유아들이 희생되는 것이다.


한번 폭력을 하면 그 사람은 매번 폭력으로 해결하고 그것이 자녀에게 이어지는 현상이다. 인간 이라서 사회라는 것을 만들고 그속에 만들어지는 사회적인 스트레스가 결국 가장의 가장 약자 희생하는것이다.


우리 사회는 체벌이라는 이름하에 쉬운 육아를 선택하고 또 군대나 직장에서 폭력이나 언어 폭력을 경험하게 되며 그게 있어야 직장이 편하다는 실력보다는 라인을 찾는 모순속에서도 이런 문제가 육아에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폭력또는 체벌을 끝까지 행사하지 않으면 아이는 체벌하는것보다 조금은 늦지만 적응하게 되고 방치하지 않는 이상은 배우면서 자란다. 그런게 훈육하는게 정상이다. 체벌은 끝까지 아니다.


육아는 엄마를 편하게 하는게 아니고 아이편에서 생각해야 된다.

항상 그것만 생각하면 된다. 기다림이 힘든 아니는 기다림에 대해 지속적인 가르침을 줘야하고 밥먹기 싫은 아이들에게는 맛있게 먹는 방법들을 교육해야 한다. 하지만 체벌 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사회는 폭력에 대해 너무 관대하다.


아이들은 쉽게 깨지는 계란 껍질만큼 속살은 금방 노출되면 그만큼 아려온다. 우리 기억 깊숙히 생각해 보면 알거다. 그 아려오는 속살이 다시 껍질이 생길때 까지 아픔이 계속 된다 하지만 서서히 깨지는 알은 속살이 준비를 하고 껍질을 깨고 나온다. 우리는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아이의 껍질을 한번에 깨서 빨간 속살을 그대로 내 놓으려 한다. 그게 체벌의 가장 큰 문제이다. 


아직 교정보지 못했습니다. 주말에 한번더 정리하겠습니다.
이미지는 되도록 온화한 이미지로 넣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5살 다혜의 다도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