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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sha Oct 26. 2023

순간을 달리는 도서관

사각사각. 펜이 움직이는 소리. 팔랑. 책장 넘기는 소리. 터벅터벅. 누군가 걸어가는 소리. 턱. 책장에 책 꽂는 소리. 열람실에서 만들어 내는 모든 소리는 동적인 정적이다. 배경 같은 자연스러운 소리라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소음이라는 생각 없이 스쳐 지나간다. 나는 이 정적 소리가 참 좋다. 집중이 잘되는 음악 소리 같다. 이 소리를 내는 모든 사람이 무언가에 집중하며 내는 소리이기도 해서일까. 오리고 쓰고 붙이는 과거의 내가 보여서일까.

 문 앞의 6인용 열람실 책상은 인기가 없었다. 사람들이 계속 드나드는 곳 앞이기도 하고 여름이면 더운 바람이, 겨울이면 찬바람이 쉴 새 없이 드나드는 통에 오래 집중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금요일 오전, 그 자리는 온전히 내 차지였다. 아르바이트 중인 영어 학원에서 금요 영어 게임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큰 도화지와 A4용지, 색연필과 가위, 풀 등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어 흡사 어린아이의 책상 같았다. 오리고 붙이고 적으면서 준비한 영어 게임으로 아이들이 웃으며 즐기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 당시 지친 대학 생활에서 단물 같은 행복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열람실 가위녀’로 불렸다고 한다. 세상 진지한 얼굴로 신나게 오리고 붙이며 책상을 어지럽히고 있는 모습이 웃기면서도 신기했다나.

 도서관을 이용하는 모두는 각자의 이유로 이곳에 오겠지만, 나는 주로 내 의지가 꺾여 낙담했을 때이다. 그들이 지식을 찾거나 탐구하는 그 집중의 순간을 보기 위해 이곳으로 발걸음이 움직인다. 매 순간을 힘차게 달리고 있는 이들을 보고 있자면 이상하게 힘이 나기 때문이다. 그들을 통해 나를 본다. 그러면 그저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어서 이 순간을 달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잡다한 생각을 툭툭 털어 내고 열정적으로 가위질하던 그때의 내가 되어 달릴 채비를 하게 된다.

 순간을 달릴 수 있도록 묵묵히 나를, 또 모두를 응원해 주는 곳. 이 도서관 열람실에 앉아, 마음을 다잡고 다시 미래를 향해 달릴 각오를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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