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 대접을 받고 자유를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있는 힘껏 달렸다. 뛰고 또 뛰어서 심장이 빨리 뛰다 못해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심장이 힘차게 뛰는 것을 느끼며 잘하고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빨리 뜀으로써 주변의 아름다움을 지나쳐 버렸다. 군데군데 응원 나온 가까운 사람들의 진심 어린 말들을 스치게 되었다.
끊임없이 달린 탓에 다리가 후들거리고 땀은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땀을 닦으며 잠시 쉬게 된 어느 순간, 시간은 혼란스러웠다. 지나쳐 바뀌어 버린 환경을 둘러보며 불안해졌다. 여기가 어디지? 내가 오고자 한 곳이 여기가 맞나? 이곳에 오려고 그리 열심히 뛰었나? 생각했던 어른의 그림자는 기대했던 것보다 크지도 자유롭지도 못했다. 하지만 멈출 수 없기에 다시 길을 재촉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미친 듯이 뛰기보다 주변을 둘러보며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정해 다시금 출발했다. 쉼 없이 달려왔던 그 열정이, 또 그사이 만들어진 잔근육들이 이 여정의 무게를 조금 덜어 주었다. 뛰면서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생겼다. 주변은 아름다웠고 사람들의 응원은 따듯했다. 그동안 빠르게 지나쳐 버렸을 아름다움이, 따듯했을 말들이 아쉬웠다.
조금 더 뛰다가 힘에 부쳐 달리기가 서서히 느려졌다. 터벅터벅, 걸음이 되어버렸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벤치가 보여 앉아 쉬기로 했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나. 가만히 생각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따스한 색의 노을이 해를 둘러싸고 소중한 듯 품어주고 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갑작스러운 벅참이 스멀스멀 가슴께까지 차올라 울컥, 뜨거운 눈물이 되었다. 그동안 힘들었을 모든 순간이 위로되는 듯했다. 아, 여기서 이 순간을 보고 느끼려고 그리도 뛰었구나. 어른이 된다는 건 심장이 아스러지도록 아름다운 순간을 느끼는 것이구나. 시간은 생각했다. 흐르던 땀이 지는 해에 비치어 반짝였다. 희미하게 짓는 미소도 반짝였다. 그래. 눈부시게 노을 지는 해와 아직도 쉼 없이 뛰는 심장이 있으니 이제 되었다.
"나이가 든다는 건 참 좋은 거 같아. 여유 있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아."
몇 년쯤 전이었다. 달리고 또 달려서 중년의 나이가 된 큰언니의 그 말을 그때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잊히지 않았다. 오랜 시간 머릿속에 남아 있다가 어느 순간, 삶을 새로운 시각으로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엇일까?
여유. 여유가 아닐까? 모든 것이 그 자체로도 완벽하게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여유. 경험을 통해 사소한 일상이, 그리고 그 일상 속의 슬픔과 고난조차 삶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아는 여유. 완벽한 아름다움이란, 그 완벽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여유를 느끼는 본인조차도 뜨겁게 아름다워 보인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