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과 다르게 물이 귀하고 데우기도 어렵던 옛날에는 일요일마다 목욕탕에 가는 일이 당연했다. 어릴 때 엄마와 함께 자주 갔었던 작은 목욕탕인 ‘천수탕’ 입구에 들어서면 벌써 비누 향이 섞인 깨끗한 목욕탕 냄새가 났다. 촉촉하고 향긋한 목욕탕 냄새. 그것을 ‘목욕탕 냄새’ 말고는 달리 다르게 표현할 수가 없다.
목욕탕은 나에게 묵은 때를 밀고 정갈하게 몸을 씻는 신성한 장소가 아니라 상쾌한 놀이터였다. 나와는 일란성쌍둥이인 동생과 함께 신나게 뜨거운 물과 찬물을 오가며 자맥질해 대다가 주변 아주머니들에게 한 소리씩 듣고, 다음으로 엄마에게 엉덩이를 한 대씩 아주 찰지게 철썩철썩 맞고서야 자동으로 튀어나온 입술과 함께 초록색 때밀이로 대충 때를 벗기는 흉내를 내었다.
목욕탕에 오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나나 우유와 야쿠르트였다. 엄마가 우리 둘을 목욕탕에 데리고 가기 위한 가장 큰 협상물이기도 했다. 바나나 우유와 야쿠르트 없이는 목욕을 가지 않겠노라 했었던 선언 덕에 엉덩짝은 또다시 불이 났지만, 일요일에는 어김없이 바나나 우유와 야쿠르트를 먹을 수 있었기에 그저 행복한 요일이었다. 먼저 목욕을 끝낸 동생과 내가 벌거벗은 몸으로 탈의실에서 활개 치다가 늦게 엄마가 나오면, 각자의 손에 바나나 우유나 야쿠르트를 들고 몹시도 말랐던 목을 축였다.
쌍둥이 동생이 감기에 걸린 어느 일요일, 엄마와 단둘이 목욕하고 탈의실로 나왔지만, 우유 아주머니가 안 계시는 바람에 바나나 우유를 마시지 못했다. 바나나 우유는 집에 가는 길목에 있는 ‘점빵’(우리는 그때 가게를 점빵이라고 불렀다.)에서 사기로 하고 목욕탕을 나섰다. 만화에서 나옴 직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산 바나나 우유를 받아 들고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큰소리가 났다. “아니 글쎄, 내가 이천 원을 확실히 드렸다니까요.” “아니라고요. 여길 보세요. 소쿠리에는 아까 다른 손님께 받은 2천 원 말고 없잖아요.” 돈을 지불했다는 엄마와 받지 않았다는 점빵 주인아주머니의 다툼이었다. 졸지에 나는 바나나 우유를 마시며 싸움 구경을 했다.
승리의 여신은 우리 엄마의 편을 들어주며 엄마는 멋지게 점빵을 나오셨고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 아까 있었던 일을 아빠께 설명하며 어이가 없어하셨다. 옷을 갈아입으시며 이제는 그 점빵에 안 간다고 하시던 엄마가 순간, 행동을 멈추었다. 벗어 두었던 옷을 다시 주섬주섬 입더니 내가 꼭 같이 가야 한다며 내 손을 꼭 잡으셨다. 영문도 모른 체 엄마의 손을 잡고 도착한 곳은 아까 그 점빵. 엄마는 주인아줌마에게 정말 미안하다며 급히 사과하고 주인아주머니께 2천 원을 드렸다. 영문 모르고 지켜보던 나까지 아주머니께 죄송하다며 사과시켰다. 엄마가 집에 가서 옷을 벗을 때 두어 번 접어 입었던 그 몸빼 바지의 허리춤에서 2천 원이 떨어진 것이다. 탈의실에서 바나나 우유를 사기 위해 돈을 손에 쥐고 있다가 내가 정신없이 뛰어다니자, 나를 급히 잡으려고 바지 허리춤을 접으면서 그사이에 끼어들어간 것이다. 당연히 지불한 줄 알았던 2천 원이 허리춤에서 뜬금없이 나타나자 엄마는 바로 나를 데리고 사과를 하러 간 것이다. 그때는 어릴 때라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항상 당당하셨던 엄마가 사과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졌다.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내 손을 꼭 힘주어 잡았다. 그러면서 잘못했을 때는 자기 잘못을 바로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자신의 것이 아니면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며 사소해 보이지만 마음과 돈에 대한 정직함은 살아가는 데는 아주 큰 힘이 될 거라고 당부했다. 이상하게 기분이 뭉클했다. 그날따라 엄마가 좀 멋있게 느껴졌었다. 싸움에서 이겨서 좋은 것도 있었지만 당당히 잘못을 인정하는 그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참으로 우리 엄마답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 어린 나이에 너무 감동하여 남의 것을 절대로 탐하지 않고 바르게 컸다고 하면 오산이다. 잠시 고백의 시간을 마련해 보자면, 그 후로 자라면서 나는 지금의 초등학교에 다닐 때 두 번의 도둑질을 했다. 아니다. 한 번을 불발이었으니 한 번밖에 없다고 해야 하나? 처음은 가게 안에서 과자를 몰래 슬쩍 들고 나오다 심장도 너무 뛰고 기분이 너무 찝찝하여 도로 들고 들어가 몰래 놓고 온 적이 있다. 또 한 번은 엄마의 지갑에 손을 대었던 기억이다. 그즈음 새로 나왔던 충격적이고 사랑스러운 맛, 메로나 아이스크림을 너무도 먹고 싶었던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은 슬쩍 엄마 지갑에 손을 대었다. 당시 몇 백 원 안 하던 아이스크림 바를 새벽 6시 반에 일어나 총알같이 점빵에 뛰어가 사 먹었더랬다. 전날 밤새도록 메로나를 먹고 싶었던 마음이 입안의 아이스크림처럼 녹으면서 처음 한 두 입은 천국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메로나를 다 먹고 남은 나무작대기를 손에 들고 현관문에 들어서며 느껴지는 그 찝찝함과 패배감에 입 안이 썼다. 촛불 켜지듯 어스름히 밝아지는 새벽녘에 현관문 앞에서 몇 번이고 망설였다. 혼이 날까 봐 들어가지도 못하고 서성이다 끝내 울음을 터트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엄마가 바나나 우유 사건 이후로 내게 주문을 걸어 놓으셨던 걸까? 그때 느꼈던 도둑질의 찝찝함이 너무 강렬해서인지 엄마의 그 양심 부적 덕분인지 혹여라도 양심이 고민할 일이 생기게 되면 누군가가 불을 피우는 것처럼 가슴이 뜨거워 절대적으로 마음이 편한 쪽을 선택한다. 아주 크고 센 부적을 야무지게 붙여놓으신 듯하다.
엄마의 바람대로 그리고 나의 바람대로, 바르고 정직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아직은 감사하게도 그럭저럭 부적이 잘 통하고 있는 듯하다. 그만큼 고민할 일도 없어서이겠지만 역시나 아주 용한 부적인가 보다. 다른 부적도 몇 개 만들어 달라고 할 걸 그랬나 싶다. 아니, 당장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다른 부적을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늘어놓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