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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sha Mar 04. 2023

눈물 실린더


 어릴 때는 툭하면 울었다.

넘어져서 울고, 동생이 내 과자를 다 먹었다고 울고, 고이 접은 종이비행기가 구겨져서 날지 못한다고 울었다. 내게 있어 눈물은 유일한 사치였다. 눈물을 참아야 한다고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터라 아낌없이 드러냈었다. 그간 수십의 세월이 흘러 감정을 모두 드러내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손에 생긴 작은 생채기의 정도는 우습게 넘기고, 병원에 가야 할 정도가 아니고서는 아프다고 앵앵거리기도 민망해졌다.


몸에 난 상처뿐 아니라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였다.

대화할 때 눈에 보이게 큰 칼을 가진 상처를 주는 말이 아니라, 내 마음에 생채기를 만들지만 깊이 생각할수록 찌질해지는 기분이 들어 넘겨버리는 생각들. 마음먹은 데로 기분 좋게 일이 진행되고 있지 않을 때 찝찝함. 그럴 의도는 없었으나 오해의 소지가 있을지도 모르는 말을 한 것 같을 때의 소심함과 망설임 등은 '에라 모르겠다'의 감정 쓰레기통에 넣어버리지만 고민했던 흔적은 작은 생채기로 남아 꾸역꾸역 마음속 ‘눈물 실린더’의 눈금을 채우고 있었다.


그러다,

주인공의 마음이 너무나 공감되는 슬픈 드라마를 보고 있던 어느 순간, 또는 누군가와 깊이 공감하는 대화를 하던 어느 순간. 꽉 채워져 더 이상 채울 공간이 없는 내 눈물 실린더는 변비로 내내 고생하다 화장실 가야 하는 신호가 오는 순간처럼 순식간에 시원스레 비워질 때가 있다. "아. 갑자기 내가 왜 이러지? 눈물이 멈추질 않네." 영화처럼 대사도 읊어준다. 먹는 것도 몸에 남아 쌓이면 비우는데 쌓아둔 감정도 비우지 말라는 법이 있나.


이상하게도 한 번 비우고 나면 마음이 가볍다.

변비[便悲 : 편할 편(똥오줌 변), 슬플 비]. 뭐, 다시 조금씩 실린더는 채워지겠지만 적어도 비우지 못해 변비로 고생하지는 않고 있는 듯하다. 사치를 부리진 못해도, 숨기진 못해도, 순환이라도 잘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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