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엔비디아는 의미있는 발표를 했습니다. 바로 인텔이 터줏대감으로 오랫동안 패권을 쥐고 있었던 CPU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죠. 사실 인텔이 5년 동안이나 14 나노에 머무르면서 14나노 장인 소리를 듣고 있을 때 AMD가 TSMC 7나노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이미 시장의 주도권을 빼앗겨본 경험이 있는 인텔의 입장에서는 엔비디아의 PC 용 CPU 시장 진출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은 상황입니다.
PC 시장에서 인텔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현재 PC 시장 CPU는 인텔과 AMD가 양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데요. 둘 사이의 점유율은 아직도 월등한 인텔의 우세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 양상은 전과는 매우 다른 양상인데요. 자꾸 인텔이 AMD의 추격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약 3년 전인 2020년에만 해도 서버용 CPU 시장은 인텔의 독점시장과도 같은 양상이었습니다.
AMD는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죠. 하지만 점유율 그래프를 보시면 알 수 있듯 AMD의 점유율은 계속해서 상승하는 추세이지만 인텔은 하락을 면하지 못하고 있죠. 현재는 7:3 정도의 점유율을 유지중이라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하지만 팻 갤싱어는 한 오피셜 행사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 바가 있었습니다.
“인텔은 적어도 2025년까지 AMD에게 시장을 계속 빼앗길 것이다.”
인텔 CEO의 이 발언이 현실이 되어 지금과 같은 기울기가 계속된다면 서버 시장에서 인텔과 AMD의 CPU 점유율은 5:5에 수렴될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AMD의 희망회로겠지만 말이지요.
전통적인 텃밭이었던 PC 시장의 양상은 어떨까요?
다음의 그래프는 퀘이사 존에서 인용한 트랜드포스의 X86 세그먼트에서의 PC 시장 CPU 점유율입니다.
2022년 2분기에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PC에서는 여전히 인텔의 절대적 우위가 지켜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PC 시장에서 인텔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음의 그래프를 보시죠. 그래프는 현재 CPU의 시장이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X86 진영 CPU 시장 전체는 꽤나 가파르게 상승중입니다. 하지만 붉은 색의 데스크탑 시장을 보시면 되는데 소폭 반등하긴 했습니다만 전체적인 그래프의 기울기는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닙니다.
모바일 CPU는 노트북이나 태블릿 등 휴대 기기들의 점유율을 보여주는 지표인데요. 역시 무선통신 기술의 발달과 함께 모바일 CPU 수요는 꽤나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주었지만 최근 경기 침체와 함께 꽤나 큰 하락폭을 보여주었습니다.
주목해서 보아야 할 지점이 바로 회색선... 바로 서버시장인데요.
2023년의 경기 하락 사이클에 PC도, 모바일도 모두 무너져 내렸지만 서버는 홀로 상승곡선을 그렸습니다. 즉 X86 진영 전체의 상승은 현재 상황에서는 서버가 하드캐리 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자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그래프들은 모두 X86진영에 국한된 데이터들입니다.
CPU는 크게 인텔과 AMD가 주도하는 X86진영과 애플과 각종 모바일 디바이스 제조사들이 난전을 벌이고 있는 ARM 진영으로 나뉠 수가 있습니다.
사실 PC=X86, 스마트폰, 태블릿, 웨어러블 AP=ARM 이라는 공식이 지금까지는 통용이 되었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PC에서도 저전력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AP를 넘어 CPU 시장에까지 ARM 진영이 침투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데스크탑 PC보다 LAP TOP 즉 노트북 시장이 크게 성장하고, 태블릿이 대형화 되면서 PC 수준의 생산성을 갖추게 되면서 ARM 진영의 CPU가 더욱 부각되는 상황입니다. 이는 다음의 표를 통해 더 확실히 드러나는데요.
2027년까지 인텔과 AMD 등 X86 진연의 점유율은 점차 내려가는 데에 비해 ARM 기반 CPU들의 약진이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즉 모바일 CPU 시장에서의 인텔의 입지는 지속적으로 축소되는 반면 애플, MS 등 인텔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ARM 아키텍처 중심의 커스텀 CPU를 개발하는 데에 성공한 기업들의 비중이 점차적으로 증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장 상황 가운데에서 엔비디아가 PC용 CPU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엔비디아는 인텔, AMD 등 전통의 X86 강자와의 정면 대결을 피하면서도 확실하게 자신의 포지션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ARM 아키텍처를 선택했습니다. 즉 그들과는 다른 길을 가겠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ARM 기반의 PC용 CPU 시장에 도전하는 엔비디아의 속내는 무엇일까요?
1. 온 디바이스 AI 시대에 대비하는 엔비디아의 방식
엔비디아는 이제까지 게이밍 GPU 회사로 포지셔닝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2022년과 2023년의 엔비디아 실적을 보면 엔비디아를 과연 게이밍 GPU 회사로 불러야 할지에 대해서 의구심이 들게 만드는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데이터센터의 실적이 게이밍 사업 부문의 실적을 뛰어넘는다는 점입니다. 엔비디아는 이젠 명실상부한 AI 가속기의 최강자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게이밍의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데이터센터의 매출이 눈에 띄게 증가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AI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서버 회사들은 AI 연산이 가능한 고성능의 GPU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엔비디아의 고성능 GPU를 쓸어 담듯 확보하기 시작합니다. 엔비디아 GPU의 확산에 큰 공을 차지한 것은 바로 엔비디아의 소프트웨어 플랫폼인 CUDA의 힘이었습니다.
CUDA는 엔비디아 GPU의 성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최적화 시켜주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입니다. 엔비디아는 자사 GPU의 확산을 빠르게 하게 위하여 CUDA 플랫폼을 무료로 배포하였습니다. 그 결과 꽤나 많은 PC 제조사들과 데이터센터 기업에서 CUDA를 채택하기에 이르렀고, 엔비디아 GPU가 시장에서 최강자의 자리를 차지하는 데에 큰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하지만 엔비디아는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자사의 CUDA 플랫폼이 있지만 결국 엔비디아의 GPU도, CUDA도 X86기반의 인텔 서버 CPU 안에 종속된 일종의 연산 보조 수단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엔비디아는 한 가지 전략을 실행으로 옮깁니다. 바로 AI 하드웨어의 통합이었습니다.
엔비디아는 그레이스 CPU를 출시합니다.
자사의 고성능 GPU를 앞세워 서버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한 엔비디아가 이제는 서버용 CPU인 그레이스 시리즈를 출시한 것이죠. 이를 통해 소프트웨어 플랫폼 CUDA의 바탕 안에서 AI 연산과 실행이 모두 가능해지는 AI 서버의 엔비디아 천하를 꿈꾸게 된 것이지요.
물론 아직까지는 인텔 CPU의 아성을 무너뜨리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AI 서버 시장에서 엔비디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어마무시한 만큼 인텔의 점유율을 갉아먹는 효과는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프트웨어 플랫폼 - GPU - CPU를 통해 AI 천하 통일을 이루려는 엔비디아의 야심은 과연 성공할까요?
이렇게 AI 서버시장에서의 풀스택을 꿈꾸는 엔비디아는 이젠 소비재 시장인 PC용 CPU 시장에도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엔비디아가 PC용 CPU 시장에까지 진출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온 디바이스 AI 시대에 대비하는 엔비디아
현대 시대는 이제 사소한 부분에까지 AI 가 탑재되고 있습니다.
퀄컴의 CEO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스마트폰에 AI 기능이 탑재되지 않는다면 그 회사는 도태되고 말 것이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이제 AI가 서버의 영역을 벗어나 우리가 직접 사용하는 디바이스에도 보편화 된다는 말입니다. 말 그대로 "온 디바이스 AI"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온 디바이스 AI가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엄청난 연산량을 커버할 수 있는 반도체의 성능이 뒷받침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 시대를 강타한 생성형 AI 모델은 이제까지 통용되던 일반 AI 모델과는 매개변수의 수 자체에서 어마어마한 차이를 보입니다. 그 많은 연산량을 처리하기 위해 엄청난 컴퓨팅 파워가 필요한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엄청난 연산량을 디바이스에서 처리한다면 들어가는 전력량을 무시할 수 없겠죠.
바로 이 때 중요한 것이 저전력 기술입니다. X86 진영에서 상대적으로 취약성을 보이는 저전력의 이슈를 ARM 기반 아키텍처는 충분히 커버할 수 있습니다. 고성능을 담보하면서도 X86 대비 적은 전력으로 유사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CPU의 설계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예를 이미 경험하고 있습니다. 바로 애플의 M1, M2 시리즈를 통해서 입니다.
애플의 M1, M2 시리즈는 X86 진영의 CPU들보다 낮은 전력 소모를 보여주지만 밀리지 않는 성능으로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킨 바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인텔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하고자 하는 여러 업체들은 현재 X86 아키텍처가 아닌 ARM 기반의 CPU 시장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일례로 우리 리사수 누님의 AMD도 ARM 기반의 CPU를 개발하겠다고 천명하고 나섰습니다.
엔비디아 역시 이번에 2025년까지 ARM 아키텍처 기반의 CPU를 개발하겠다고 공식화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예고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X86 진영과 ARM 진영 간의 PC용 CPU 시장에서의 경쟁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 경쟁의 링은 저전력 고성능이 될 것입니다.
어떤 칩이 더 적은 전력으로 더 높은 성능을 뽐낼 것인가를 두고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 되었고, 엔비디아가 이 시장에 다크호스로 뛰어 들었습니다. 왜 엔비디아는 PC용 CPU 시장에 뛰어든 것일까요? 그것은 AI 분야에서 서버 즉 B TO B 시장 뿐만 아니라 B TO C 시장까지 모두 먹겠다는 야심이 서려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바와 같이 서버 시장에서는 어느 정도 상하방 통합을 이루는 데에 성공을 했습니다. 그레이스 CPU의 출시로 인해 소프트웨어 - CPU - GPU에 이르는 AI 서버 통합의 라인업을 구축하는 데에 성공했죠. 하지만 소비재 시장으로 넘어오면 사실 엔비디아의 영향력은 외장 GPU의 영역으로 축소됩니다.
온 디바이스 AI의 시대가 오는데 엔비디아가 외장 GPU에서만 영향력을 유지한다면 PC에서는 여전히 인텔에 종속된 보조적 의미의 하드웨어를 공급하는 업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미약하나마 CPU 라인업이 있다면 게다가 엔비디아의 CPU가 인텔의 것보다 전력은 적게 먹으면서도 더 나은 성능을 보여준다면 시장은 이에 반응하게 될 것입니다. 더이상 X86 아키텍처의 영향력 안에서 부수적인 역할을 하는 GPU만을 생산하는 회사가 아니라 독자적으로 소프트웨어 플랫폼부터 시작하여 CPU와 GPU 그리고 AI 가속기까지 모두 통합이 가능한 명실상부한 AI 기업으로 탈바꿈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과연 엔비디아는 2025년까지 PC 시장에서의 전후방 통합을 이루어 내는 데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말그대로 AI 풀스택 기업으로 폭풍 성장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칩 시장에서의 엔비디아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하게 증대될 것이 자명합니다.
3. 한계
한계를 말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은데요.
엔비디아는 잇따라 저전력 프로세서를 만드는 데에 실패해 온 전력이 있는 회사입니다. 모바일용 AP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호기롭게 도전했던 테그라는 보기좋게 말아먹었죠. 저전력 AP를 만들랬더니 전력 먹는 하마를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때 역시 ARM 아키텍처인 A-15를 사용했지만 저전력에 보기좋게 실패한 전력이 있습니다.
엔비디아의 ARM 인수가 물건너간 현 상황에서 ARM 아키텍처를 사용한 개발에서 또 다시 피를 보지 말라는 법이 없죠. 물론 개발을 천명한 단계에서부터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 조금 걸리긴 합니다만 엔비디아가 테그라와 같은 전례를 또 밟지 말란 법은 없기에 앞으로의 개발 진행상황을 면밀하게 체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PC용 CPU 시장의 추이, 온디바이스 AI로의 패러다임 전환과 이에 대응하는 엔비디아의 전략 등을 살펴보았습니다. 실패할지, 성공할지, 아직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다만 엔비디아는 실패의 전력이 있는 만큼 테그라를 반면교사로 삼아 기가막힌 PC용 CPU를 출시하여 시장의 폭풍으로 부활에 성공하길 기대하며 긴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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