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은 인텔에게 시련의 한 해였습니다.
7 나노 공정 구축이 지연됨에 따라 7 나노를 기반으로 한 신제품의 출시가
6개월에서 1년 정도 딜레이 될 것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발표를 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인텔의 주요 서버용 CPU 고객이었던 아마존, MS 등 대표적 클라우드 기업들이
자체 서버용 CPU를 개발하겠다고 천명하여 인텔의 가슴을 졸이게 만든 해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엔비디아에게 시총을 역전당하는 굴욕을 당하는 등 2020년은
인텔에게 그 어떤 해보다 악몽을 선사했던 해였습니다.
인텔에게는 변화가 필요했죠. 그래서 새해 들어 인텔이 단행한 첫 번째 변화는
사람을 교체하는 일이었습니다. 지난 1월 13일 밥 스완 CEO를 경질하고
전 인텔 CTO 출신이었던 팻 겔싱어를 차기 CEO로 내정했습니다.
2013년 인텔 6대 CEO로 부임한 브라이언 크르자니크는
인텔의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많은 수의 기술 인력들을 구조 조정하고
틱톡 전략을 폐기하는 등 기술 혁신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입니다.
크르자니크 이후 부임한 밥 스완 또한 기술보다는 재무관리에 이점을 보였던
CEO였습니다. 두 명의 CEO를 거치면서 인텔은 기술 혁신과는 거리가 먼
수익성에 무게를 둔 기업으로 변모하면서 정체되었습니다.
주력인 CPU 부문에서는 AMD에게 헤게모니를 빼앗기기 시작했으며
공정 혁신 면에서는 TSMC와 삼성전자 등 파운드리 기업에게 헤게모니를 빼앗기면서
인텔은 반도체 업계의 거대 공룡에서 반도체 업계의 고인 물, 샌드백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러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한 인텔을 구하기 위한 구원투수로
인텔 CTO 출신이었던 팻 겔싱어가 선출되었습니다.
팻 겔싱어는 우리나라로 치면 고졸 신화를 쓴 인물입니다.
1979년 고졸로 인텔에 입사한 이후 약 30여 년 동안 인텔의 여러 요직을 거친
인텔의 기술 통입니다. 이후 CEO 자리를 두고 숀 말로니와 경쟁을 펼치던 중
건강 악화로 경쟁에서 도태되면서 인텔과의 연을 정리하기도 했지만
인텔은 CEO 경쟁에서 밀려 회사를 떠났던 그에게 SOS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에 응하면서 인텔과의 연을 다시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겔싱어가 부임한 뒤 “파운드리와의 협력을 늘려나가겠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1월 21일 오후 삼성전자가 인텔과의 파운드리 계약을 체결했다는 뉴스가
타전되면서 삼성전자의 시간 외 거래가가 폭등하는 등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겔싱어는 이렇게 반응하는데요.
“인텔은 7 나노 공정이 갖고 있는 문제를 해결했다. 7 나노 제품은 인텔 내부에서 제조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22일 삼성전자가 상한가를 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겔싱어가 7 나노 자체 생산을 천명하면서 삼성전자 주가는 횡보를 계속했습니다.
하지만 겔싱어는 파운드리 업계에 다소 희망고문이 될 수 있는 발언도 이어나갔는데요.
“생산 물량 중 일부를 외부 파운드리로 활용할 계획이며 이는 우리 계획에 중요한 부분이지만,
주요 내용은 오늘 밝히지 않을 것이다.”
겔싱어 CEO가 아직 취임 전이기 때문에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못하지만
그가 취임하고 난 후 인텔이 어떤 칩셋을 어느 정도 비율로 어떤 파운드리에 맡길지 발표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까지 인텔은 10 나노 공정 최적화에 계속하여 실패하면서 14 나노에 머물러
반도체 업계에서 14 나노 장인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습니다.
아직도 인텔의 주요 주력 반도체는 14 나노 공정으로 생산되고 있습니다.
크르자니크와 밥 스완으로 이어진 재무전문가 CEO 집단은 인텔을 고인물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갤싱어가 CEO로 낙점되면서 인텔은 정초부터 강력한 기술 드라이브를 걸고 있습니다.
7 나노 최적화 문제를 해결했음을 밝히면서 7 나노 제품을 자체 생산하겠다고 밝히면서
일단 인텔의 주주들을 안심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공정 문제가 사람 하나 바뀐다고 쉽게 해결되는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겔싱어의 7 나노 내재화 발언은 무엇인가 뚜렷한 해법이 나왔기 때문에
발표한 것이라기보다는 7 나노 공정 지연으로 인해 동요하는 주주들을 안정시키고
빠른 기술 개발을 통해 현재의 난관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그의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보는 것이 좀 더 설득력 있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 견해를 말해 봅니다.
제가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7 나노 내재화 발언과 동시에
파운드리 물량을 늘리겠다는 발표도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7 나노 공정을 안정화시키고 양산을 시작할 때 까지는
7 나노 CPU를 개발하여 한시적으로 파운드리 라인을 활용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이에 따라 인텔발 파운드리 희망 고문은 겔싱어가 CEO로 취임하여
구체적인 로드맵을 밝히기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말 그대로 소문만 무성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이번 인텔 GPU 수주는
분명 의미 있는 행보이긴 하지만 기뻐하긴 이르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미 시장이 이번 인텔 파운드리 수주의 한계를 여실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인텔의 핵심인 CPU 수주가 아닌 이미 TSMC를 통해 외주생산을 하고 있는
GPU 수주라는 사실, 7 나노 이하 선단 공정 수주가 아닌
삼성전자 오스틴 파운드리의 14 나노 공정을 통해 생산된다는 사실은
이번 파운드리 계약이 가진 한계점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즉 아직까지 인텔의 핵심 CPU 물량을 맡길 정도로
삼성전자의 신뢰관계가 구축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방증합니다.
또한 TSMC가 오랜 기간 파운드리 사업을 하면서 축적해 온 파운드리 기술력 또한
무시하지 못할 것입니다. 삼성전자가 무서운 속도로 TSMC와의 기술력 격차를
좁히고 있고, 또한 전공정에 한해서는 TSMC에 앞서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지만
전체적인 공정 신뢰도나 성능 최적화 부문에서 TSMC에 따라오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한시가 급한 인텔 입장에서는 모험보다는 안정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TSMC 공정 로드가 많이 걸려 있어 인텔의 모든 물량을 혼자서 처리하기는
무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차선책으로 일부 물량을 삼성에 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아직까지는 TSMC 공정 로드로 인한 낙수효과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봅니다.
즉 갤싱어가 CEO로 부임하여 파운드리 로드맵을 발표한다고 해도
삼성에게 대형 계약을 선물로 안겨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입니다.
그리고 7 나노 내재화를 선언한 만큼 인텔에서 파운드리로 흘려보내는 물량이
예상만큼 큰 물량은 아닐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삼성이 인텔 GPU를 파운드리 수주한 것은 환영할 일이긴 하지만
인텔에서 구체적인 파운드리 로드맵이 발표되기까지 좀 더 기다려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인텔에서 어떤 파운드리 로드맵을 발표한다고 하더라도 파격적인 물량이
발표되진 않을 것이며 파운드리 업계에 미치는 영향 또한 제한적일 것이라고 예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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