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가장 선명해지는 순간

브런치를 시작하며

by 아기돼지

최상급을 묻는 질문 앞에서 말문이 막힐 때가 종종 있다. ‘제일’ 감명 깊게 읽은 책은? ‘가장’ 좋았던 여행지는? 과 같은 질문들. 대부분의 경우에 경험이나 행위, 특정 옵션에 대한 호불호는 당시 나의 상태나 그 상황에 놓인 숱한 맥락 사이에서 결정된다. 서로 다른 이유, 서로 다른 배경 속에서 감상은 다채로울 것인데, 그 색깔을 줄 세워 박제하는 것은 아무래도 내키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해서 왜 내가 이 질문에 답하기가 어려운지 구구절절 말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어차피 상대도 가볍게 묻는 것일진데, 혼자 미간에 주름을 잔뜩 얹은 채로 “그건 말이야…” 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인 것이다. 살다보면 선호랄지 취향이라는 것은 생겨나기 마련이므로 그 안에서 적당히 순위를 매기면 될 일일지도 모른다.


스무 살 무렵, 영어회화 학원을 다닐 때의 일이다. 강사의 개념 강의가 끝나면 수강생들끼리 짝을 지어 회화 연습을 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 날은 최상급 표현을 배운 날이었다. 곧이어 내 짝이 퍼붓는 the most와 the -est의 질문이 쏟아졌다. 무슨 음식을 제일 좋아하니, 가장 갖고 싶은 것은 무엇이니,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뭐야… ‘제일’, ‘가장’, ‘최고로’의 향연 속에서 갈 곳을 잃은 혀가 입 안을 누볐다. 그건 말이야, 상황에 따라 좀 다른데 말이야. 한국어로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질문 앞에서 나는 어느새 에라 모르겠다, 심정으로 거짓말을 술술 뱉고 있었다. 응 나는 파스타를 제일 좋아해, 내가 가장 갖고 싶은 건 노트북이야, 영화, 응 노팅힐 그거 제일 좋아해. 전부 거짓말이었다. 하고 싶은 말은 하나도 하지 못한 채 회화 시간이 끝났다.


우습게도 그런 날엔 집에 돌아와 가끔 글을 썼다. 글을 쓴다는 것은 조금 더 정확해지는 것이기도 했다. 시간을 복기하고 마음을 쫓아가며 여러 질문에 대한 답을 살폈다. 그 시간 속에서 때로 비슷해 보이는 두 서술은 의미 있는 차이를 가졌다. 모두가 그 차이를 알아야 할 이유는 없었으나, 적어도 나는 알고 싶었다. 결국 정확해지고 싶다는 욕망을 지닌 자가 글을 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자비한 삶의 도리깨질 속에서도 누군가는 쓴다. 쓰지 않는 것이 더 힘들기 때문이다.


어차피 진실에는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그 여정 가운데서 비로소 입체성을 띠었다. 내가 단순한 존재가 아니듯 타인과 세상도 그러할 것이라는 인식은 그렇게 생겨났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단 하나의 진실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 묻길래, 글을 쓰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대답에 허세가 섞일까 되려 낯이 뜨겁다. 어떻게 하는 것인지 묻길래 나도 모른다고 했다. 나도 모른다. 하지만 삶이 가장 선명해지는 순간이라는 것은 알겠다. 글쓰기가 주는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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