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혼자 살 때의 일이다. 세탁기를 돌려야겠는데 놀랍게도, 아니 부끄럽게도 이전까지 세탁기를 돌려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나이 서른이었다. 경험적 지식이 전무한 일 앞에서 나는 사용설명서부터 꺼내 들었다. 세탁기 앞에 쪼그리고 앉아 각 부분별 명칭이 적힌 첫 장부터 꼼꼼히 읽어 내려가던 나는 마침내 매뉴얼의 마지막 장을 덮고는 비장하게 세탁기 문을 열어 젖혔다. 글로 익힌 연애 기술을 실전에 적용하려는 풋내기 사랑꾼의 마음이 이러할까. 양말 몇 켤레, 수건 한 장, 베갯잇 하나 주섬주섬 집어넣는데 이상한 설렘과 긴장이 교차했다. 그래, 세탁기 한 번 돌려보자. 진정한 생활인이 된 기분이었다.
난관은 여러 번 있었다. 일단 적당한 세제의 양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세제 뒤에 적힌 사용법에는 세탁물의 중량별로 적정 세제양이 다르게 기재되어 있었다. 세탁물의 무게를 재야 하나? 저울이 없는데? 그럼 세제도 계량컵에 넣어봐야 하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흡사 국가적 과제를 수행하는 실험실의 연구원이라도 된 양 정확에 정확을 거듭하며 세제를 투여하고는 ‘운전’ 버튼을 누르던 순간을 기억한다.
세탁기 앞에 앉아 세탁물이 이리저리 돌아가며 세제와 섞이고, 거품이 씻겨 나가고, 마침내 정신없이 회전하며 탈수가 되는 과정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은 그날 이후 나의 오래된 습관이 되었다. 이상한 평온이 세탁기가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찾아왔다. 단순한 몇 번의 조작으로 빨랫감들이 최선을 다해 깨끗해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바라보고 있노라면 오래된 걱정과 하루치의 피로 또한 그런대로 견뎌지는 것만 같았다. 나는 자주 세탁기 앞을 지키고 앉았다.
인생은 역설일까. 엄마는 내가 서른이 되도록 세탁기 한 번 돌려보지 않게 키웠지만, 나는 정확히 같은 이유로 하루빨리 집을 떠나고 싶었다. 나의 손으로 내 삶을 꾸려보고 싶었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완벽한 타지에서 완전히 새로운 일을 해보고도 싶었다. 어쩐지 지금의 나는 갖지 못하는 다른 인생을 향한 동기부여가 이토록 헌신적인 부모의 돌봄이 소거된다면 생겨날 것만 같았다. 집을 떠났으나 여전히 삶의 구태를 뒤집어 쓴 채 살아가던 나는 끝없이 돌아가는 세탁기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던가.
탈수가 끝나고 세탁기 작동이 멈추면 머릿속을 떠다니던 수많은 상념도 그쳤다. 실재의 세계로 돌아온 나를 기다리고 있는 작업은 빨래 널기. 세탁의 공정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계이다. 세탁기에서 빨랫감을 꺼내 주름지지 않게 탁탁 털어내는 과정 속엔 건조기가 줄 수 없는 손맛이라는 것이 있었다. 물론 건조기의 뽀송함이 부럽기도 했지만 혼자 살던 시절 내 작은 원룸에서 건조기는 사치였으므로 나는 창문을 활짝 열고 연신 빨래를 털어댔다. 여기, 내가 처음으로 세탁기를 돌리던 날 건조대에 널었던 빨랫감의 사진을 첨부한다. 나는 진정 요깟 빨래를 널고 그토록 뿌듯해했던가.
여기까지 쓰다 보니 이 사람,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철부지구나, 싶은 오해가 생길까 조심스럽다. 온실 속 화초, 다음 생이 있다면 내 꿈은 이거다.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이고 싶다. 평행우주 속 어딘가에선 그런 내가 주름 없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신나게 살아가고 있기를 빈다. 빨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