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프랑스 샹송 ‘En Avril, à Paris’(4월, 파리에서)를 피아노 솔로로 편곡한 버전을 듣다 미끄러지듯 행복한 기분에 빠졌다. 어느덧 나는 가벼운 셔츠 자락을 어루만지며 4월의 이른 아침, 세느 강변을 걷는 사람이 된다. 몹시도 고단했던 지난 날들이 그저 꿈결에 불과했다고 말해주듯 바람은 부드럽게 머리칼을 간질이고, 물기를 머금은 하늘은 눈부시다. 주변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늦은 오후의 뤽상부르 공원은 어떠한가. 벤치에 앉아 책을 읽다 말고 손을 잡고 걸어가는 어느 노부부를 바라보는 풍경은.
이해되지 않는 이국의 언어는 이상한 자유를 선사한다. 그 사이로 흩어지는 우리의 언어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물결 위로 부서지는 햇살에 대해, 살아온 기억과 살아갈 힘에 대해 이야기하다 세상살이에 대한 의무감은 잠시 접어두고 햇빛에 반사된 글라스가 반짝이는 카페로 향할 때, 그런 우리의 모습을 롱숏으로 담는 필름이 있다면 그 배경에는 ‘4월, 파리에서’가 흐를 것 같다.
문득 수없이 많이 떠났던 여행지에서 바라본 하늘을 떠올린다. 우레시노의 온천에 몸을 담그고 총총히 박혀있던 하늘의 별을 헤아렸던 2월의 밤을, 몰타의 블루라군에 누워 내리쬐는 태양을 온몸으로 받아냈던 8월의 뜨거운 오후를, 머리 위로 낮게 날던 치앙마이의 비행기를 가리키며 하늘 저 너머로 웃음소리를 보내던 1월의 어느 날을 떠올린다.
산다는 건 뭘까. 우리는 우리의 수많은 기억들을 묻고도 내일을 기대할 수 있을까. 발그레한 볼을 하고, 환하게 웃으면서, 때로는 언젠가의 4월을 꿈꾸며, 그럴 수 없다 해도 괜찮다 말하면서.
알 수 없다. 그래도 삶은 흐른다. 그 와중에도 어떤 순간은 우리를 꼭 붙들지. 그런 순간 없이 살아가기란 어려운 일이다.
9월, 서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