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가만히 있는 것을 잘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시간이 남으면 무엇인가를 늘 배우거나 읽거나 하다못해 청소기라도 돌려야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뭐라도 해야 불안하지 않은 그의 딸로 태어나 긴 시간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흘러가는 시간을 응시하는 것이 그에게는 죄악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지나간 그의 인생을 떠올리다 나는 그러나, 그가 어쩔 수 없이 가만히 있어야 했던 숱한 시간에 다다른다. 그는 수없이 많은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살았다.
언젠가 아빠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일본어 교본을 병원으로 좀 보내 달라 청했다. 오랜 기간 타인과 말을 섞지 않은 채 입원 생활의 길고 지난한 시간을 견뎌야 했던 아빠의 말투에선 사멸한 문어체와도 같은 흔적이 놓였다. 테이블 하나 제대로 없던 그 오래된 병실에서 아빠는 어디에 기대 책을 펼쳐놓고 공부를 했을까.
아빠가 돌아가시고 병원에서 몇 안 되는 유품을 정리하다 오래전 내가 보내드린 일본어 책을 발견했다. 귀퉁이마다 페이지가 접혀 있던, 구석구석 펜으로 공부한 흔적이 남아있던 그 책을 나는 끝내 버리지 못했다.
팔에 힘이 없어 펜으로 글씨를 쓸 수 없게 된 이후에도 그는 몇 년이나 더 병실에 누워 있었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말을 나눌 대상은 수화기 너머 가족뿐이었는데, 결혼한 첫째는 어렵고 아들인 막내는 조심스러워서였을까. 그는 늘 나에게 전화를 했다. 회의를 하다가도, 이동 중에도,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도 그에게서 전화가 오면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지 못하면 핸드폰에는 부재중 전화가 열 통, 스무 통씩 찍혔다. 나는 사람들과 같이 있다가도 아빠에게 전화가 걸려 올까봐, 동시에 전화를 받지 못할까 봐 늘 불안했다.
수화기 너머 아빠는 항상 숨이 넘어가는 목소리로 같은 말을 하고, 하고, 또 했다. 어느 날엔가는 자신이 스스로 죽을 계획을 다 세워 놓았다는 말도 했다. 그런 말을 자식에게 하는 부모가 어디 있냐며, 죽을 거면 곱게 죽으라는 말을 하던 날의 나를 기억한다. 투병은 길었고 끝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매일같이 걸려오는 전화에 이러다 내가 죽고 말지, 싶던 즈음 딱 하루 아빠로부터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빠는 거짓말같이 세상을 뜨셨다.
인혜야, 미안하다.
평생 가족을 복잡하게 괴롭게 하셨음에도 본인이 감당해야 할 고통의 파도가 너무도 깊은 나머지 가족들에게 고맙다, 사랑한다 말해본 적 없던 아빠는 마지막 몇 달간 이따금씩 나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사랑은 잡을 수 없는 말이었다. 고마움은 미안함을 넘지 못했다. 그리하여 미안함만이 간신히 그에게 남았다. 그는 뜻대로 안 되는 자신의 육체에 갇혀 형벌과도 같은 삶을 살다 해를 넘기지 않겠다고 다짐이라도 한 양, 한 해의 마지막 날 바람같이 가셨다.
아빠, 나도 미안해.
이 말을 아빠에게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의 마음에도 끝내 지워지지 않는 미안함이 남았다. 바람이 차갑던 한겨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