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갈 수 있을 때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의 봉쇄가 풀려서 열흘만에 단지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긴 줄을 서서 한 시간 남짓을 기다려 나와 아이들의 출입증을 받았다. 아파트 봉쇄는 풀렸지만, 여전히 외부인의 단지 내 출입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어서 이 출입증이 있어야만 단지 밖으로 나가고 들어올 수 있다. 봉쇄가 풀렸지만, 언제 다시 봉쇄가 될지 알 수 없다. 실제로 바로 옆 아파트 단지가 봉쇄가 풀린 하루 만에 확진자가 나왔다고 다시 봉쇄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게 마지막 외출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것이 마지막 아이스 라떼일 수 있다고 생각하며 매일매일 악착같이 나갔다.
봉쇄가 풀린 바로 다음날, 나는 염색을 하기 위해 조계지에 있는 헤어숍으로 달려갔다. 헤어숍이 오픈을 하는지, 그래서 선생님은 봉쇄가 해제돼서 출근을 하는지, 그리고 나도 갈 수 있는지! 이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날이었기에 나는 고민할 틈 없이 지금 바로 가겠다 말하고 택시를 잡아타고 간 것이었다.
헤어숍 특유의 향기와 건네지는 커피 한잔과 은은하게 깔리는 음악, 그리고 통창 너머로 보이는 안푸루의 화창한 봄날 풍경이, 지금 여기저기 봉쇄되고 있는 상해 상황과 너무도 딴판이어서 다른 나라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꼼꼼하게 염색되고 다듬어진 머리칼을 찰랑이며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는 안푸루 거리로 나섰다. 주말이었고, 나처럼 봉쇄가 풀려 오늘이 마지막 외출일지도 모르는 상해 사람들로 거리가 북적였다. 마스크를 꼭 쓴 채 조심하면서도 부드러운 바람을 맞으며 거리를 걸으니 정말 머리 뚜껑이 펑하고 열리는 듯 기분이 한껏 업되었다. 근처 유명한 꽃집에서 트로피컬 한 컬러의 꽃도 사고, 마침 가장 좋아하는 라일락도 가지채로 나왔길래 안 아름을 샀다. 이곳에 올 때마다 들르는 빈티지 샵에서 티셔츠도 하나 샀다.
문득 내가 염색하고 돌아오길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미안해졌다. 너희들도 나와야 하는데, 너희들도 함께 봉쇄돼서 고생했는데.. 그래.. 내일도 또 나오자. 내일은 아이들과 함께. 아이들이 마음에 걸려 발걸음을 돌려 서둘러 집에 갔다. 아이들을 데리고 아쉬운 데로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내일 나와 함께 브런치를 먹으러 나가자 제안했다.
카페에서 갖고 놀 닌텐도도 야무지게 챙기고, 모처럼 머리도 땋고 길을 나섰다. 그토록 먹고 싶다던 치킨을 먹었고 좋아하는 편집샵에서 쇼핑도 함께 했고 바람도 불지 않아 걷기 딱 좋은 길을 아이들과 오래 걸었다. 다른 때였다면 다리 아프다고 칭얼댔을 텐데, 워낙 오랜만의 외출이라 그런지 아이들은 걷기 좋다는 말을 연발했고, 장시간 외출이 불안해진 나에게 아이들은 오히려 카페는 들르지 않느냐며 졸랐다.
그렇게 주말 이틀을 꼬박 외출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주말 밤, 급작스럽게 상해가 전면 봉쇄를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푸동이 먼저 일주일 봉쇄를 시작하고 푸시는 돌아오는 금요일부터 전면 봉쇄라 했다. 상해는 황푸강을 기준으로 푸시와 푸동으로 나뉘어 있는데, 서울로 따지면 강남과 강북으로 나뉘었다고 할 수 있다. 상해는 공식 인구만 2,500만 명에 달하고 중국 경제 중심지라 도시 전체를 차마 봉쇄는 못하고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푸동과 푸시를 나눠서 봉쇄하는 것이었다. 이번 봉쇄는 아예 현관문 밖으로도 나갈 수 없는 ‘찐 봉쇄’였다. 아파트 단체 위챗 방, 한국 교민 위챗 방, 회사 주재원 위챗 방 모두 난리가 났다.
갑작스럽게 당장 두세 시간 후 봉쇄를 하게 될 푸동은 그야말로 충격의 도가니였다. 말이 일주일이지.. 이것이 이주가 될지 삼주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달려 나가 엄청난 사재기를 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싸움은 당연한 결과였다. 한국 뉴스에 흘러나온 야채를 사기 위한 사람들의 몸싸움은 이날 밤에 푸동에서 벌어진 일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푸시 지역에 살고 있는 나는 며칠의 시간이 주어졌고 언제 조계지 거리를 한가롭게 걸으며 쇼핑을 했냐는 듯, 월요일 아침부터 나 역시 사재기 대열에 합류했다.
이미 푸동이 봉쇄되어 물건 입고가 원활하지 않을 수도 있고, 다음 주 봉쇄가 1주 만에 끝난다는 보장이 없고, 설령 운이 좋아 1주 만에 봉쇄가 끝난다 하더라도 슈퍼에 물건이 바로 입고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나는 3주를 바라보고 모든 물건들을 쟁여야 했다.
난 이제까지 살면서 이렇게 많이 물건을, 특히 음식을 사본적이 없었다. 뭘 사든 4개~6개 이상이었다. 물과 쌀과 계란은 가는 곳마다, 갈 때마다 구입했다.
바로 어제의 찬란했던 안푸루의 기억과 두부를 쓸어 담는 오늘의 내 모습의 괴리가 너무 커서, 나는 눈물이 날 것 만 같았다.
이게 다 무슨 일이지..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아마도 내 옆에서 멸균 우유 한 박스를 담는 남자도
냉동 핫도그를 4 봉지를 쟁이는 여자도
여기 상해 사람들은 모두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게 다 무슨 일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