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판이라는 거울

자화상

by sparkling ink


늦은 나이 대학원에 진학하고 Between A& B 시리즈를 시작했었다. 이 작업을 시작한 동기는 늦은 나이 학업을 하다 보니 주변의 작은 반응까지도 신경이 쓰이던 시절이어서 시작된 것이다. 내가 보는 나 A와 나를 바라보는 타인 B사이에 충돌이 있었다. 여러 개의 내가 있다. 내가 아는 나 A, 타인이 알고 있는 나 B, 나도 알고 타인도 알고 있는 나 C, 나는 모르는 나 D, 타인은 알고 나는 모르는 나 E, 나는 알고 타인은 모르는 나 F, 나도 모르고 타인도 모르는 미지의 나 G 가 있다고 할 때 나는 나를 얼마나 많이 아는가. 나는 나를 제대로 알기는 할까. 나를 알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좋을까?라는 질문과 애당초 나라는 고유한 것이 있기는 있는 것일까? 하는 근원 적인 물음을 갖게 된다. 어느 날은 호르몬의 지배를 받고, 어느 날은 나의 컨디션이… 나의 기저에 깔린 DNA가 … 나를 휘두르고 있는데..

그렇다면 나의 호르몬이 나인가? 나의 컨디션이 나인가? 나의 DNA가 나인가? 나의 배경이 나인가?

이러한 질문 속에서 나의 작업의 시작은 귀였다. 귀속에서 삭이지 못하고 귀 안을 맴돌다가 스스로 생채기를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중 귀안을 들여다보는 인체가 등장한다. 귀 구멍 안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인체는 쪼그리고 앉아 있기도 하고, 거대한 물방울과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인체는 나를 바라보는 나,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기 위해 나로부터 분리되어 외부에서 나를 바라보기 위해 노력하는 나이다. 그러나 나로부터 나를 분리하고 나라는 껍질을 벗고 나와 나를 바라본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누구도 나로부터 분리될 수 없으며 외부에서 나를 바라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Between A& B 6, gumprint, 76x107cm,2008

나에게 귀는 은유적인 거울이다. 평판이라는 거울. 나를 비추는 거울이며,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다.



저녁약속으로 중고등부 옛 친구들을 만났다. 두세 달에 한 번씩 만나는 나의 유일한 친목 모임이다. 친구들과 옛이야기를 나누다가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의 추억을 나누던 중 한 친구는 내가 시크하고 세상 시시한듯한 나의 고등학교 때 모습이었다고 말해 주었다. 내가 그랬던가? 나도 모르던 나의 모습이었다. 중학교 때 친구는 내가 체육시간에 교사의 명령에 응하지 않고 대들던 내 모습을 이야기했다. 친구들은 나의 옛 모습을 상기시켜 주었다. 부분적으로는 내가 모르는 나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내가 아닌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과거 속의 나도 타인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작가가 나를 바라보며 자화상을 그릴 때 작가가 작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비로소 관객은 알 수 있다. Between A& B 시리즈는 자화상을 그리기 전에 작가의 자신에 대한 관찰의 시작점이며 일종의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