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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trospect Apr 18. 2023

남자친구를 이해하기 위해 "공감 능력 부족"을 검색했다

생각지 못한 결과에 눈이 뜨이다 6

끊임없는 영상통화로 장거리 연애를 이어나가던 우리의 연애 후반 부에 내가 자주 했던 말이 있다. 

'혹시 인터넷 연결이 끊겼나? 내 말 듣고 있어?'

그는 항상 대답했다. '아주 재미있게 듣고 있었는데?'

우리 연애의 어느 순간부터 그는 핸드폰에 랙이라도 걸린 것처럼 응답이 뜸했다. 이런저런 삶의 고민과 친구들의 이야기에는 어떠한 리액션도 후속 질문도 없었다. 우리의 대화는 겉돌았고, 거의 지난 하루를 브리핑하는 수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가끔은 나의 걱정에 대한 어떠한 반응도 없는 것이 어색하고 신기해서 그 다음날 다시 그의 생각을 넌지시 물으면, 자꾸 안 좋은 걱정을 하게 되면 안 좋은 결과가 나게 되는 법이니 그런 생각은 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대화는 그저 무엇을 먹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우리가 다시 재회하면 어디서 무엇을 먹을지에 대한 대화만 오고 갔다. 나의 감정에 대한 시원한 소통을 내 가장 가까운 연인과 할 수 없음에 내 속은 점점 욕구불만이 쌓였고, 조금씩 조금씩 답답함 불안함 등의 알 수 없는 동요가 일었다. 

연애 초반에 워낙 결혼에 관한 주제로 나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던 그였기에 우리는 스몰 웨딩이 좋은지 성대한 결혼식이 좋은지에 대한 이야기며, 2세는 몇 명을 나을지, 그에 필요한 영양소 섭취 계획까지 세웠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이가 점점 깊어지고 있는 우리가, 이 장거리 연애를 어느 장소에서 종지부 지을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잘할 수 없었다. 남자 친구가 이 주제가 나오면 은근히 대화를 회피한다는 느낌이 있었기에 최대한 조심히 이야기를 꺼냈고, 그는 곧 얼굴 볼 시간이 다가오는데 만나서 이야기하면 되는 것이고, 아직 시기상조라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앞으로 이야기를 해나갈 문제이기에 걱정하지 말라고 했고, 나 역시 알겠다고 마음을 잡았다. 


하지만 통화 후 내 마음은 잘 잡아지지 않았다. 다시 잘 생각해 보니 실제로 오랜만에 얼굴을 보면 이런 얘기를 하기보다는 데이트로 바쁠 것도 같았고, 서로의 위치에서 검색에 대한 여유가 있을 때 각자 리서치를 해보고 만났을 때 더 깊게 상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아직 이른 감이 있다는 말에 대해서도, 결혼식보다 2세보다 더 먼저 고민해야 할 부분이 정착할 장소라고 생각되어서 시기상조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고 생각이 되었다.  이런 고민은 함께하는 게 연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내 생각을 잘 전달하고 싶어서 편지를 썼다. 서로 워낙 이메일을 자주 주고받던 터라 이 이메일이 내 남자 친구를 그렇게 화나게 할 줄은 까마득히 몰랐다. 

시차로 인해 아침시간에 그 메일을 받았던 그는, 아침 날벼락을 맞았다며 비난했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으며, 어떤 확신이 더 필요한지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열쇠를 그에게 주면 줄 수록 우리의 관계는 점점 시궁창으로 빠져갔다. 내가 내 감정에 대한 설명을 열과 성의를 다해서 친절하게 하면 할수록, 그의 인내심은 바닥을 쳤고, 점점 더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는 정착지에 대한 해결방안이 아직 없는 상태에서 어떤 공수표를 바라는 것이냐고, 지금 반지라도 끼워주길 원하는 거냐고 물었다. 

나는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고, 삶의 파트너로서 해결방안을 같이 만들어가자는 이야기이며, 방안이 없으면 우리 잘 만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서로 토닥여주며 관계를 발전시키고 싶다고 했다.

그는 또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그에게서 무언가를 끄집어내려고 드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러한 토닥거림은 해줄 수 없다고 했다.


그때 처음으로 어떤 가능성이 떠올랐다.

그것은 그를 이해하려고 세웠던 어떠한 내 가설보다도 강력했다.


항상 내 생각은 이랬다. 

'이 사람은 나의 선한 의도를 나쁘게 오해하고 있나 보다. 내가 친절히 사랑을 다해서 설명을 해준다면 분명히 나를 이해하겠지.'

'부모님이 엄하셔서 감정 표현에 서투르고 억압하고 살았나 보다. 내가 많이 공감하고 들어주면 더 감정 표현에 익숙해질 수 있겠지.'

'회피형 애착이라면 내가 다그치는 순간 더 멀어지려는 습성이 있을 수 있지. 내가 그의 안전기지가 되어서 떠나지 않을 사람도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줘야지.'

하지만 이러한 내 생각들은 그의 행동을 설명하기에 무언가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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