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바쁜 일정들이 하나둘 끝나고
이제야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이 찾아왔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독서모임에 참석해
책과 사람 사이를 오가는 이야기들을
나누고 돌아오는 길,
곧장 집으로 향하기에는 마음이 조금 아쉬웠다.
오늘은 혼자만의 조용한 공간이 필요했다.
자연스럽게 운전대를 좋아하는 북카페 쪽으로 돌렸다.
거리는 조금 있었지만,
생각을 비우며 달리기엔 나쁘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풍성하던 나뭇잎들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마른 가지들만이 도로 가장자리에 썰렁하게 서 있었다.
늘 가던 익숙한 길이었지만
달라진 풍경을 찾듯 천천히 눈길을 옮기며
카페에 도착했다.
북카페는 반지하 서점과 1층 카운터,
그리고 2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하 서점에서 그림책 한 권과 소설책 한 권을 고르고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한 뒤
천천히 계단을 올라 2층으로 향했다.
2층에는 마루처럼 앉을 수 있는 창가 자리와
책상 자리, 테이블 자리가 나뉘어 있다.
책을 읽을 때는 마루 창가를,
글을 쓸 때는 화분이 놓인 창가 책상 자리를 고집한다.
그 자리에 앉으면
정면으로는 박제상 유적지의 모녀상이 보이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카운터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직원이 보인다.
오른쪽에는 화분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창밖 테라스에는 고양이들이 느릿하게 오르내린다.
카페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라
나는 이 자리를 유독 아낀다.
손님이 거의 없는 한가로운 오후였지만
직원은 무언가를 준비하느라 여전히 분주해 보였다.
테라스를 오가던 고양이들 가운데
작년에 이곳에 처음 왔던 검은 고양이 ‘베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때 북카페지기님이
“아기 고양이가 왔어요”라며 불러 주셨던 기억이 난다.
베리는 창가에서 책을 읽던 내 옆에 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내 옆에서 낮잠을 자곤 했었다.
“혹시 이 고양이, 베리 맞나요?”
“네, 맞아요. 오랜만에 오셨나 봐요.”
여름에 다녀갔을 뿐인데
이렇게 많이 자랐을 줄은 미처 몰랐다.
기억 속의 베리는 여전히 아기 고양이였는데,
눈앞의 베리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제법 든든한 어른 고양이가 되어 있었다.
시간은 늘 그렇게 흘러간다.
베리도, 나도
각자의 자리에서 시간을 건너고 있었다.
베리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더 여유롭고 애교 많은 고양이로 자라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자랐을까.
올 한 해를 돌아보니
든든한 두 아들과
늘 나를 믿고 지지해주는 남편 덕분에
나 역시 한 걸음쯤은 성장해 있었다.
눈에 띄는 변화는 아니지만
흔들릴 때마다 다시 중심으로 돌아올 수 있는 힘을
조금은 더 갖게 된 것 같다.
내년의 내가 어떤 모습일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이 한 해를 잘 마무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다가올 새로운 성장의 시간을
조용히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