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살아간다.
미래의 나를 위해 수많은 길을 지나야 하고,
그 길은 때로 미로 같고, 때로는 미궁처럼 느껴진다.
미로와 미궁은 닮은 듯 다르다.
둘 다 한 번 들어가면 쉽게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구조는 전혀 다르다.
미로에는 갈림길이 있다.
수많은 골목과 가지 길이 얽혀 있고,
입구와 출구는 다르다.
길을 잘못 들면 되돌아와야 하고,
방향을 잘못 잡으면 헤매게 된다.
미로는 시행착오를 전제로 한 공간이다.
반면 미궁은 길이 하나뿐이다.
선택지는 없고,
들어간 길 그대로 중심부에 도달했다가
다시 같은 길로 나와야 한다.
입구와 출구가 같은 구조.
천천히, 묵묵히 걷다 보면
결국 다시 빛으로 나오게 되는 곳이다.
지금의 나는 어디쯤 있을까.
미로 속에서 이 길 저 길을 기웃거리며
출구를 찾고 있는 걸까,
아니면 언젠가는 도착할 수 있는 미궁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걸까.
미로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목표에 닿게 해 주고,
미궁은 포기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도달하게 해 준다.
아마 나는 지금 미로 속에 있는 것 같다.
자꾸만 다른 출구가 눈에 들어오고,
다른 길이 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 길만 가지 않는다.
이 길도 갔다가 돌아오고,
저 길도 가 보고,
다양한 경험과 실패를 반복하며
천천히 미로를 헤쳐 나간다.
미로의 출구는 하나일 수도 있고
여러 개일 수도 있다.
어디에 도착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나는 오롯이 내 힘으로 길을 찾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른과 아이가 함께 미로 속을 걷고 있다.
과연 누가 먼저 미로를 빠져나올 수 있을까.
그리스 로마 신화에 따르면
크레타 왕 미노스는 미궁을 만들게 한다.
반인반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가두기 위해서였다.
미궁은 들어갈 수는 있지만
나올 수는 없는 감옥이었다.
어느 날 영웅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의 제물이 되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미궁으로 들어간다.
그를 본 공주 아리아드네는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테세우스에게 실타래 하나를 건넨다.
그 실타래 덕분에
테세우스는 괴물을 죽이고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만약 그 실이 없었다면
그는 길을 잃고 헤매다 끝내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로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알고 있다.
왼손 법칙, 혹은 오른손 법칙.
벽을 따라 한쪽 방향으로만 걷다 보면
언젠가는 출구에 도달한다는 방식이다.
물론 모든 미로에 통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이 방법을 몰랐던 시절,
나는 제주도의 김녕 미로공원과
중국 원명원의 미로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원명원의 미로는 돌담이 낮아
담 너머를 보며 비교적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김녕 미로공원은 달랐다.
이리저리 헤매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겨우 탈출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다면
미로에서 길을 잃었을 때
어른과 아이 중
누가 더 빨리 빠져나올 수 있을까.
의외로 정답은 아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직관력이 뛰어나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집중력이 높다.
어른이 갈팡질팡할 때
아이들은 오히려 더 차분해진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내게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는
바로 내 두 아들이 아닐까.
아주 가끔,
아이들이 없었다면
더 편하고 수월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잘못된 생각이 스칠 때도 있다.
하지만 다시 돌아보면
이 미로 같은 인생을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아이들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목적지까지 함께 갈 나의 아이들.
우리는 함께 헤매고,
함께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그 횟수는 조금 덜하지 않을까.
나를 어떤 미로와 미궁 속에 던져 놓아도
나는 아이들을 앞세워
지혜롭게 걸어 나갈 것이다.
그 실타래를
단단히 쥔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