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귀한 집

by 박하

시댁은 딸이 귀한 집이다.

아버님은 팔남매인데 형제 중 딸은 둘뿐이었고,

남편 역시 사촌까지 다 합쳐도 딸은 시누 포함 둘이다.

남편은 삼남매인데, 우리는 아들 둘,

시누는 아들 하나, 동서는 아들 둘.

명절에 모이면 손주만 다섯인 손주 부잣집이다.


딸 낳기 참 힘든 집안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사촌 중 한 명은 아들 하나를 두고 둘째를 가졌는데

쌍둥이 아들을 낳고 실망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낳으면 아들이라는 광산김가네라는 농담이

남편네 집안에서는 농담이 아니다.


예전에 점을 꽤 본다는 사람이

시댁 앞을 지나며

“이 집은 아들이 많이 나오는 터네요”

라고 했을 정도로 낳았다 하면

아들이 태어나는 아들터로 유명하다.


이 집안의 남자 기운은 유난히 풍요롭다.

나도 한때는 딸을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아들 둘을 낳고

과감히 딸을 포기했다.

‘아들이어도 딸 같은 아들이 있다’는 말에

나 스스로 위로를 건네며 말이다.


다행히 나에게는

딸 같은 둘째가 있다.

그 아이 덕분에

딸 없는 서운함을 겨우 달래며 살아간다.


아들 둘은 든든하다.

어릴 때는 정신 하나도 없던 아이들이

언제 이렇게 컸는지

이제는 제법 믿음직스럽다.

힘도 제법 써서 엄마대신 농사일을 돕는

일꾼으로도 손색이 없이 커버렸다.


남자아이들이라 그런지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더운 날에도 쉰내 풀풀 풍기며 축구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밀양 시내까지 다녀와서는

시원하게 샤워하고 세상 편하게 꿀잠을 잔다.

먹성은 또 얼마나 좋은지

손주 다섯이 지나간 자리에는

마치 메뚜기 떼가 휩쓸고 간 듯

접시가 말끔해진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버님의 눈에는 꿀이 뚝뚝 떨어진다.

그래서일까? 손주들만 오면

아버님은 꼭 차를 몰고 치킨을 사러 가신다.

시골이라 배달이 안 되기 때문에

왕복 30분 거리의 치킨집을 늘 직접 찾으러 가신다


먹는 모습만 봐도 흐뭇하신지

“많이 먹어라”라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면서 정작 본인은 입에도 대지 않는다.

손주 입에 다 들어가는 걸 봐야

세상 행복한 미소로 자리를 뜨신다.


아버님은 다시 한번 못 박듯 말씀하신다.

“내 살아생전에는 명절 제사는 무조건 지낸다.”

음식은 많이 하지 않을 것이고,

손주들 좋아하는 것 위주로

간단하게라도 차릴 거라고.

명절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가족들이 모일 기회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장군 같은 손주 다섯이

옹기종기 앉아 게임을 하는 모습조차

그저 좋으신 아버님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버님 말씀이 틀리지 않다.

이렇게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일 날은

점점 사라지고 있고,

명절이라도 되어야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잠깐이라도 얼굴을 마주할 수 있으니

이런날도 없으면 사촌은 정말 만나기 힘든

세상이 되어버렸다


오기 전에는 늘 마음이 불편한 곳

괜히 긴장도 되고,

몸도 마음도 바짝 경직되는 곳


하지만 막상 내려놓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명절은 북적거려야 명절이고,

맛있는 음식 앞에 둘러앉아

서로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잠시라도 나누는 날이니까.


요즘은 생각보다 큰집인 시댁에서 할 일은 별루 없다.

제사음익도 많이 줄인 탓도 있다.

하지만 손주 다섯의 밥을 챙기는 일이

오히려 더 큰일이 되었다.

제사보다 힘든일이

아들들 뒷치닥거리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풀어지는 명절이 되었다.


그 명절

설이 곧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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