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확실한 복福

by 박하


우리는 가끔 운이 있기도 하고

복을 받았다고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크고 금전적인 복도 있지만,

살다 보면 마음을 오래 데우는 건

오히려 소소하고 사적인 복들이다.


오늘은 작은 아들의 중학교 졸업식이었다.

온 가족이 함께했고, 그 자리에 친정엄마까지 있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둘째는 이미 충분히 복 받은 날이었다.


큰 아이의 졸업식은 달랐다.

아침 일찍 수업이 있어

졸업식 전, 이른 시간에

아이와 그의 절친을 학교로 미리 불러

조촐한 축하를 건네고 일터로 향해야 했다.


본식에는 남편 혼자 참석해

아들과 친구들의 추억을 사진으로 담아 왔고

나는 사진으로 그날 현장을 느낄 수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마음만 모였던,

조금은 흩어진 졸업식이었다.


그에 비해 둘째의 졸업식은

가족이 온전히 함께하는 자리였다.

그 차이가 오늘을 더 특별하게 만들었다.


아들이 졸업하는 날이라 그런지

내가 더 들떴다.

이른 아침 먼저 일어나 씻고,

부산에서 올라온 엄마까지 챙겨

꽃단장을 시켰다.

왜 이렇게 서두르냐는 남편의 잔소리는

기어이 못 들은 척 넘겼다.

욕실을 바로바로 비우고, 큰아들을 깨우고,

그렇게 온 가족의 출동 준비가 끝났다.


전날 미리 주문해 둔 후리지아 꽃다발을 찾아들고

학교로 향했다.

기억 속 졸업식은 늘 추웠는데

오늘의 공기는 유난히 따뜻했다.


두 아이가 3년 동안 오갔을 길을

천천히 걸으며 생각했다.

이 길이 이렇게 길고, 이렇게 추운 길이었나.

매일 아침 이 길을 걸었을 아이들은

무슨 마음으로 학교에 들어섰을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학교 앞에는

‘졸업을 축하합니다’라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햇살을 받은 그 문구가

아이들의 다음 도전을 조용히 응원하는 것 같았다.


둘째는 첫째와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고민도 있었지만

아이가 직접 내린 결정이기에

우리는 존중하기로 했다.

따뜻한 아이라는 걸 알기에

그 선택을 믿기로 했다.


운동장에 모인 졸업생들과 재학생들.

이번에는 교실이 아닌 운동장에서의 졸업식이라

더 많은 가족들이 함께했다.

어릴적 경험했던 졸업식의 추억들이

더듬더듬 기억이 났다.


작고 어리던 아이들이

어느새 각자의 길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니

짠하면서도 더 믿고 싶어졌다.

눈시울이 살짝 뜨거워질 즈음,

운동장에 서 있던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형아는?”

“형아 친구랑 있어. 왜?.”

“아… 안 보여서.”


두 형제는 크게 싸우지 않는다.

둘째는 늘 형의 말을 잘 듣고,

무뚝뚝한 형을 오래전부터 좋아해서일까?

형아가 아무리 쌀쌀맞게 굴어도 형아에게 대드는 법이 없다

형아 사춘기도 부모보다 둘째가 더 받아주기도 했다

졸업식에 형이 온다는 사실이

부모보다 더 반가웠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둘째는

엄마, 아빠, 형아, 그리고 사랑하는 외할머니까지

모두가 함께한 졸업식을 가졌다.

이보다 더 따뜻한 복이 있을까.

크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아도

이런 순간이야말로

삶이 건네는 가장 확실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둘째는 복 많은 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김치찌개의 법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