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갓집으로 가는 길

by 박하

어릴 적, 외갓집에서 1년 남짓 살았던 시간이 있다.

내 아래로 두 살 터울의 여동생이 있었고,

다시 세 살 터울로 남동생이 태어났다.

엄마는 연달아 이어진 육아로 많이 지쳐 있었다.


장녀였던 나는 시골 외할머니 댁으로 보내졌다.

외갓집으로 간다는 건, 내게 슬픔이 아니라 기쁨이었다.

엄마와 떨어진다는 서운함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이모의 손을 잡고 버스, 고속버스, 마을버스를 갈아타는 여정은

여섯 살 아이에게 작은 여행이자 큰 모험이었다.

차만 타면 멀미를 하던 나는

스무 살 아가씨였던 이모를 여러 번 곤욕스럽게 했지만,

그 고통조차 감수할 만큼 시골로 향하는 길은 설렜다.


고속버스가 밀양 수산에 멈추면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할머니 동네 입구에 내렸다.

그곳에서부터는 한참을 걸어야 했다.

어린아이에게는 제법 먼 거리였지만

그 길은 이상하게도 늘 반짝이고 있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 양옆에는 코스모스가 피어 반짝거렸고

도시에서는 보지 못한 식물들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왼쪽에는 논이 펼쳐지고,

오른쪽에는 둔덕진 길이 이어졌다.

어디를 보아도 여섯 살의 기억 속 그 길은

언제나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제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모두 돌아가셨고,

외삼촌은 외갓집을 다른분께 팔았다

우리가 머물 수 있는 집은 더 이상 없지만

친척들이 여전히 그 마을에 살고 있고,

할아버지가 가족들을 위해 남긴 감 과수원은 여전히 남아 있다.


가을이 되면 연중행사처럼 우리는 감을 따러 간다.

그때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긴 길을 걷다 보면

마을 어귀에 서 있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그 나무를 처음 제대로 본 건 불과 몇 해 전의 일이다.

어릴 적에는 왜 그 은행나무가 보이지 않았을까.

나무가 작아서였을까.

아니면 내가 늘 아래만 보고 다녔기 때문일까.


땅 위를 기어 다니던 곤충들,

논두렁 옆 개울의 우렁이,

저수지 속 황소개구리 올챙이들.

나는 언제나 낮은 곳에 있는 생명들을 바라보며

온 마음을 쏟던 아이였다.

어린아이의 눈높이에는 높은 세상보다

아래 세상이 이미 볼 것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이제 마을 어귀에서 손녀를 기다리던 외할머니는 없다.

하지만 가을이 오면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여전히 나를 맞아준다.

감 과수원을 언제까지 지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감이 열리는 동안만큼은

나는 여전히 그 마을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외갓집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은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지만,

그 다음으로 마음에 남는 것은

외갓집으로 향하던 반짝이던 그 길의 풍경이다.


올가을에도 감을 따러 그 길로 들어서면

마을 어귀 어딘가에서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리겠지?


“우리 영아, 왔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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