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속도로 겨울을 즐기다

by 박하


우리 부부의 겨울은 한때 그 어떤 계절보다 냉랭했다.

보드를 즐기는 남편은 두 아들이 갓난아기일 때부터

겨울만 되면 어김없이 스키장으로 향했다.


그동안 나는 늘 집에 남아 두 아이를 홀로 돌보았다.

겨울이면 혼자 훌훌 털고 나가

자기만의 시간을 즐기는 남편이 참으로 미웠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이 거슬렸고,

봄·여름·가을 내내 창고에 놓여 있던 스키 장비조차

보기 싫을 만큼 마음이 닫혀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 우리 사이가

가장 험했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치열하게 부딪히며 시간을 지나

어느덧 두 아들은 훌쩍 자랐다.

늘 혼자만 가던 스키장을

이제는 아들과 함께 가는 남편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다.


혼자 떠날 때는

“육아에서 도망쳐 혼자 즐기니 좋겠다”라며

쓴웃음을 지었지만,

부자가 나란히 스키장으로 향하는 뒷모습은

그 어떤 모습보다 보기 좋았다.


어른들은 늘 말한다.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육아의 한복판에 있을 때는

모든 걸 혼자 짊어진 것처럼 느껴져

세상이 온통 삐뚤어져 보이더니,

지금은 같은 장면이 이토록 아름답게 보이니

나 역시 참 간사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주말, 갑작스러운 일정으로

남편 혼자 가기로 했던 스키장에

나와 둘째도 함께하기로 했다.

웰리힐리로 향하던 계획은

내 제안으로 용평으로 바뀌었고,

계획에 없던 변화는 여행을 더 설레게 만들었다.

작년부터 찾기 시작한 용평은

이제 내게 또 하나의 ‘쿼렌시아’가 되었다.


남편과 아들을 스키장에 내려주고

나는 또 나만의 여행을 시작한다.

작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곳,

이번에는 책방을 검색했다.

가까운 곳에 작은 책방이 하나 있었다.

남편은 유명한 카페를 권했지만

그 지역의 결이 살아 있는 책방을 택했다.

역시 책방에는 주인장의 취향과

그 지역 사람들이 사랑하는 책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림책 몇 권과 책을 골라 창가 자리에 앉자

책방지기님이 따뜻한 생강차를 내어주셨다.


지금 이 순간,

남편과 아들은 빠른 속도로

눈 덮인 슬로프를 내려오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주 느린 속도로

책방 한켠에서 책장을 넘기고

키보드를 두드린다.

이렇게 서로의 속도를 존중하며

각자의 여행을 즐기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남편은 남편대로 취미를 즐기고,

나는 나대로 생각지 못한 여행을 누린다.


정말이지,

십 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때로는 따로 때로는 같이하는

행복과 평화의 자리를 찾았다.


강원도의 작은 책방 창밖에는

눈이 소복이 쌓여 있다.

눈이 쌓이기를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처럼

나는 오늘도

글자 하나, 문장 하나를 천천히 쌓아 올린다.


이 느린 시간의 감각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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