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은 늙지 않는다

by 박하


우리는 흔히 상상력이라는 말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창의력을 함께 떠올린다.

비슷해 보이지만, 두 단어는 미묘하게 다르다.


사전은 이렇게 말한다.

상상력은 상상하는 힘이다.

현실에 없는 장면을 떠올리고, 기억과 심상을 넘나들며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내는 정신의 움직임이다.

반면 창의력은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는 능력이다.


기존의 생각을 조합하거나 전혀 다른 개념을 발견해

결과물로 만들어 내는 힘에 가깝다.

정리하자면,

상상은 머릿속에서 피어나는 씨앗이고

창의는 그 씨앗을 현실로 옮겨 심는 일인것 같다.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지만

나는 가끔 “창의적이다”라는 말을 듣는다.

얼마 전 그림책 모임에서도 그랬다.

책을 읽다 문득 떠오른 질문과 활동들을 제시했을 때

회원들이 연달아 물었다.

“방금 생각한 거예요?”

“어떻게 그런 발상이 나와요?”

사실 나도 그런 발상이 어디에서 온지 모른다.

나도 모르게 내 머릿속에 떠돌아 다니다

툭 튀어 나온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떠오른 생각들은

내 삶을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상상력이 가장 활발하던 시절은

의외로 아주 사적인 순간들이었다.


20대 연애 시절, 발렌타인데이가 다가오면

나는 단 한 번도 지금의 남편에게 포장해서 파는

초콜릿을 구입해서 선물 한 적이 없었다.

매년 다른 모양, 다른 재료, 다른 방식으로

직접 만들어 선물했다.


아이디어는 단번에 떠오르지 않았다.

며칠 동안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이 재료를 쓰면 어떨까,

이렇게 쌓으면 모양이 나올까.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전개도를 그리고

충분히 상상이 완성되었을 때

비로소 재료를 사러 움직였다.


물론 상상은 종종 현실과 부딪히기도 했다.

재료 선택이 틀릴 때도 있고,

조합이 어긋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충분히 그려 둔 덕분에

대부분은 내가 떠올린 모습에 가까운 결과물이 나왔다.


그 시절의 나는

상상을 통해 가장 멋진 선물을 만들고 있었다.

그 모든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게 조금 아쉽다.

SNS가 일상이던 시대였다면

나는 아마 상상력을 훨씬 더 마음껏 펼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때만큼의 열정은 없지만

상상은 여전히

집중할 때, 몰입할 때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머릿속으로 그리고,

그려진 것을 현실로 옮기는 일은 여전히 흥미롭다.

때로는 상상에 그치고,

때로는 상상보다 더 멋진 결과로 탄생하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상상력을 쓰고 있다.

소설을 쓰는 작가도,

그림을 그리는 화가도,

강의를 기획하는 프리랜서 강사인 나 역시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고 상상으로 하루를 채워간다.


나이가 들면 상상력이 줄어든다는 말은

아마도 절반만 맞는 말일 것이다.

상상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관심을 잃은 순간 조용해질 뿐이다.

어디에 시선을 두느냐에 따라

모든 시간과 모든 순간에는

여전히 상상이 존재한다.


운이 좋다면,

그 상상은 창의력과 손을 잡고

꽤 근사한 결과물을 만들어 낼 것이다.

오늘도 나는 내 나이에 맞는 상상을 하나 골라

잠시 멍때리기를 해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순간에도

상상은 여전히,

우리 안에서 늙지 않고 자라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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