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과잉 시대

by 박하


몇 년 전, 강남순 작가의 《질문 빈곤 사회》가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나 역시 독서모임에서 이 책으로 하브루타 토론을 진행했다.

하지만 끝까지 완독하지는 못했다.

쉽게 읽히지 않아 중도 포기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표지에 적힌 문장은 강렬해서 기억한다.


“나는 질문한다, 고로 존재한다.”

“‘왜?’라는 물음표를 허용할 때 진보와 변화가 시작된다.”


책은 말한다.

무의미한 질문, 왜곡된 전제에서 출발한 질문은 위험하다고.

대신 풍성한 사유로 이끄는 질문, 비판적 성찰 위에

세워진‘좋은 질문’을 배워야 한다고.


그때만 해도 우리는

‘질문을 많이 해야 한다. 좋은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불과 몇 해가 지난 지금,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질문은 일상의 한 부분인 시대에 살고 있다.

예전의 질문은 사람을 향해 있었다.

부모에게, 친구에게, 선생님에게.

하지만 이제 질문의 대상은 기계다.

인간과 인간의 대화보다

인간과 AI의 대화가 훨씬 자연스러워진 시대.

아이러니하게도 질문은 넘쳐난다.


각종 AI 프로그램은 질문하는 만큼 대답해 준다.

하지만 질문의 질에 따라 답의 깊이도 천차만별이다.

무료로 사용할 때는 늘 어딘가 부족하고,

조금 더 나은 답을 원하면

결국 ‘구독’이라는 문 앞에 서게 된다.

얼마 전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

“요즘은 ‘구독 거지’라는 말도 있어요.”

AI를 비롯해 영상, 음악, 편집 프로그램까지

더 좋은 결과물을 얻기 위해

여러 개를 구독하다 보면

지갑이 먼저 비어버린다는 뜻이란다.


웃으며 들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 역시 이미 몇 개의 서비스를 구독하고 있었다.

사용할수록 결과물은 놀랍고,

놀라움은 다시 결제로 이어진다.

새로운 기술은 결코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의 욕망을 정확히 읽고,

결국 지갑을 열게 만드는 구조로 설계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흐름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다.


요즘 우리는 사소한 일상마저 AI에게 묻는다.

- 오늘 뭐 먹을지,

- 아이의 삐진 마음을 어떻게 풀어줄지

- 오늘 누가 설거지 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면 스스로 고민할 틈도 없이

질문부터 던지고 있는 건 아닐까.

몇 년 전 ‘질문 빈곤 사회’라던 책 제목이

이제는 ‘질문 과잉 사회’로 바뀌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AI는 수많은 질문을 먹고 자란다.

질문이 많을수록 더 똑똑해지고,

어쩌면 언젠가는 인간의 사고를 넘어설지도 모른다.

자율주행을 넘어 좋은 질문과 좋은 생각마저

대신해 주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기술의 속도는 이미

하루 단위를 넘어섰다.

어쩌면 1시간, 1분, 1초마다

세상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까.

혹은 따라가야만 할까? 따라가지 않으면 도태될까?

지금 우리가 던지는 이 수많은 질문들이

언젠가 부메랑처럼 우리에게 돌아오지는 않을까?


쓸모 있는 고민인지,

괜한 걱정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오늘도 묻는다.


"오늘은 어떤 질문을 했니?"

"생각은 하고 물어 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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