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둥근 평상

by 박하


어릴 적 나는 길쭉한 마당이 딸린 작은 주택에서 살았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왼쪽에는 조그만 화단이,

오른쪽에는 허벅지 높이의 담이 있었고,

그 사이 좁은 마당을 지나 계단 두 단을 내려가면

우리 집이 나왔다.

지금 떠올려보면 우리집 안방에는 가구가 거의 없었다.

장롱 하나, TV 선반 하나, 작은 서랍장 하나.

그게 전부였다.

어쩌면 그 시절에는 많은 가구가 필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밥상은 늘 좌식이었다.

둥근 밥상 하나를 가운데 두고 가족이 빙 둘러 앉아 밥을 먹었다.

아니, 넷이었다.

지금 글을 쓰다 보니 알게 되었다.

엄마는 늘 그 자리에 없었다.

우리가 다 먹고 일어나야 엄마는 늦은 식사를 했다.

부엌은 방보다 낮은 구조였고,

엄마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르내리며 집안을 돌봤다.


주택이라 불편한 구조였고 없는 것도 많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의자였다.

내 인생에서 처음 의자를 가졌던 건 중학생 때,

엄마가 큰마음을 먹고 책상을 사주면서였다.

그제야 ‘앉는다는 것’에 등받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그렇다면 의자 대신 앉을 곳은 없었을까.?

있었다. 마당 한켠, 아버지가 손수 만든 평상이.


우리 집은 일자형 주택 두 채가 마주 보는 구조였다.

윗채에는 우리가 살았고,

아랫채에는 다른 사람이 살았다.

아버지는 그 아랫채 벽에 붙여 긴 평상을 놓았다.


나는 늘 그 평상 위에서 놀았다.

평상에 앉으면 안방이 훤히 보였다.

여름이면 그곳에 앉아 안방 TV를 봤다.

옆집 언니와 친구들, 동생들과 함께 수박화채 그릇을 안고 ‘전설의 고향’을 보던 밤들.

평상은 나의 놀이터였고 쉼터였다.

인형놀이도, 공기놀이도 그 위에서 했고,

처음으로 엄마에게 사과 깎는 법을 배운 곳도 평상이었다.

때로는 엎드려 숙제를 했고, 더운 밤에는 그 위에 누워 잠들기도 했다.

큰집이었던 우리 집은 제사 음식 준비도 모두 평상에서 이루어졌다.


그렇게 우리의 엉덩이와 가장 오래 마주했던 자리.

그 시절 우리에게 의자는 없었지만,

함께 앉는 평상이 있었다.

요즘은 혼자 앉는 의자가 넘쳐난다.

각자의 자리가 분명하고, 거리도 정확하다.

하지만 평상은 다르다. 누군가 다가오면 엉덩이를 슬쩍 밀어 자리를 내준다.


시골 마을에 가면 당산나무 아래 놓인 평상 위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

어르신도, 부녀회원도, 아이들도 그 위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평상은 늘 사람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혼자만의 편안함을 주는 의자보다

함께 앉는 불편함을 기꺼이 나누는 자리.

네모 반듯하지만 마음은 둥근 그 평상.


요즘 아이들은 알까?

의자보다 사람이 먼저였던 그때의 그 자리를

매거진의 이전글질문 과잉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