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의 저주

by 박하


사람들은 보통 행운의 숫자로 7을 말한다.

그렇다면 불행의 숫자도 있을까.

나에게는 있다.

어릴 때부터 따라다닌, 유독 마음이 시린 숫자.

바로 3이다.


나는 삼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두 살 터울의 여동생, 다섯 살 터울의 남동생.

아이를 셋 낳는 일이 눈총받던 시절이었다.

“아들딸 가리지 말고 하나만 낳아 잘 살자”는 말이 당연하던 때였다.

여섯 살이 되던 해, 나는 외할머니 댁으로 보내졌다.

엄마가 동생 둘을 돌보느라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울지는 않았다. 다행히 슬프지도 않았다.

그곳에서 내 나름대로의 행복을 만끽했으니까.

대신 이별이 무엇인지, 숫자 셋이 만든 첫 균열을 그때 배웠다.


초등학교 시절에도 나는 늘 가운데에 있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 사이,

키 큰 아이들과 작은 아이들 사이,

언제나 나는 다리 역할을 했다.

양쪽을 이어보겠다고 애쓰다 보면,

결국 부러지는 건 내가 만든 다리였다.

둘을 잇는다고 나섰지만,

상처는 늘 내 몫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삼총사였다.

나를 포함해 셋.

우리 셋은 늘 붙어 다녔고,

친구들은 우리를 하나로 보았다.

그러다 2학년이 되며 반이 갈라졌다.

담임선생님은 우리를 서로 다른 반으로 흩어 놓았다.

쉬는 시간에도 만날 수 없을 만큼 멀어졌다.

나는 억울했고, 화가 났고, 선생님께 달려가 울면서 따지기도 했다.

그때 처음 ‘떼어 놓음’이라는 말이 현실이 되는 순간을 알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우리는 각자의 길로 갔고,

그게 우리들의 마지막이었다.


대학교에서도 이상하게 셋이 되었다.

별명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묶인 우리 셋은

‘곰 세 마리’라고 불렸다.

이제는 어른이니 괜찮겠지 싶었다.

하지만 셋은 늘 애매했다.

둘씩 짝을 지어도 남는 사람이 생기는 불운의 숫자.

졸업 작품 조를 짜는 순간, 균열이 생겼다.

나는 다른 팀을 선택했고,

그 선택은 관계의 끝이 되었다.

미안하고 속상한 나머지 그해 나는 졸업을 미루고 휴학을 하게 되었다.

또다시 혼자 남았다.


아이를 낳고도 마찬가지였다.

큰아이 백일 친구를 만들어 줄꺼라고 맘카페에서 동네 엄마들을 만났는데

처음에는 넷이었는데 어느순간 우리모임은 자연스레 셋이 되었다.

어른들의 시기와 감정이 아이들에게까지 번지며

관계는 그렇게 흐트러졌다.

다행히 어른들의 일을 전혀 모르는 아이들은 여전히 잘 지내지만

엄마들과는 멀어졌다.

나는 오래 미안했다.


그 뒤로 나는 셋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어딜 가도, 누구를 만나도

셋이 되는 순간이 오면 먼저 물러났다.

문제가 생기기 전에 빠져나오는 법을 배웠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역할을

그만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안다.

숫자 3이 죄가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그 안에서 내가 늘 ‘중간’에 서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어 보려다 부서지고,

참으려다 상처받고,

조용히 빠져나오며 혼자가 되는 방식으로

나는 나를 지켜왔다.


그래서 나는 요즘 혼자 있는 연습을 한다.

셋이 되지 않기 위해,

누군가의 중간이 되지 않기 위해.

혼자여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해.

혼자서도 잘 일어서는 연습을 한다.


아참 그런데 어쩌지?

지금 함께 글을 쓰며 편집하고 있는 편집부도

세 명이다.ㅋㅋ


아직도

나의 숫자 3은

완전히 떠나지 않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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