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 남겨둔 이야기

by 박하


스무 살의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는 설렘으로 가득했다.

대학은 지방에 있었고, 그때부터 나의 통학 수단은 기차가 되었다.

집이 부산역 근처였기에 매일 아침 기차를 타고 학교로 향했다.

버스나 다른 교통수단도 있었겠지만, 가장 빠른 길은 늘 기차였다.


당시에는 월 정액권 같은 기차 표가 있었다.

회수권처럼 생긴 그 표를 보여주면 한 달 동안 자유롭게 탈 수 있었다.

학생을 위한 것이었는지 모두를 위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표 덕분에 나는 하루의 시작과 끝을 기차 안에서 보냈다.


기차를 타고 학교에 간다는 건, 버스나 지하철과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같은 시간에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늘 같은 기차에 몸을 실었다.

부산에서 출발한 친구들이 먼저 타고,

구포에서, 원동에서 또 다른 친구들이 합류했다.

기차는 그렇게 하루치 우정을 태우고 달렸다.


벌써 삼십 년 전의 일이다.

그 시절 기차는 낭만 그 자체였다.

수업을 마치고 탈 수 있는 막차는 밤 11시나 12시쯤이었고,

그걸 놓치면 새벽 2시 기차를 기다려야 했다.

연애를 하던 시절, 막차를 놓치고 역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첫차를 기다리던 밤도 있었다.

기다림마저 데이트였던 시절이었다.


깜깜한 밤, 부산으로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선배를 만나면 늘 스낵칸으로 끌려갔다.

맥주 한 병과 안주 하나를 시켜 나눠 마시던 술맛은

이상하리만큼 달았다.

스무 살의 밤은 그렇게 기차와 함께 흘러갔다.


등하교를 기차로 하다 보니 추억도 자연스레 쌓였다.

마음에 드는 학우와 나란히 앉았을 때의 설렘,

술에 취해 실려 오던 신입생 시절,

대학교 CC였던 지금의 남편과

자리가 없어 세면장에 겨우 걸터앉아 오던 날,

기차와 기차 사이에서 사랑을 키우던 시간들.

대학교 4년은 말 그대로 기차와 함께였다.


지금의 남편과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던날 헤어지기 싫어

막차를 타고 부산역에 도착하자마자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던 날도 떠오른다.

“잘 도착했어?”

“응. 우리 오늘부터 1일이야.”

그 말 한마디로 세상이 다 가진 것 같았던 날이었다.


지금의 부산역은 완전히 달라졌다.

건물도, 풍경도, 분위기도 바뀌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의 모습보다 스무 살의 부산역이 더 선명하다.

그곳에는 나만의 추억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후배들은 내가 겪은 그 시절을 알지 못한다.

학교는 이전했고, 기숙사는 잘 갖춰졌으며

굳이 기차로 통학할 이유도 없다.

학교 다니기는 훨씬 편해졌지만,

그때만의 낭만과 속도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마음속 추억 열차가

오래된 선로를 따라 달리는 날이다.

스무 살의 나를 태우고,

기차는 천천히, 그러나 선명하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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