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김치가 망했다!
시댁에는 명절과 생일 말고도 해마다 빠지지 않는 큰 행사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5월 5일, 온 가족이 모여 하는 모판 작업이고
다른 하나는 12월 첫째 주 일요일에 치르는 김장이다.
작년 12월 첫째 주 일요일도 어김없이 소집령이 내려왔다.
며느리는 둘뿐이라, 김장 노동력의 대부분은 우리 몫이다.
양도 둘이서 버무리기엔 어마무시하다.
사람들은 배추에 양념을 버무리는 일을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건 김장 과정 중 가장 쉬운 일이다.
배추를 절이고, 씻고, 물기를 빼고
마늘·생강·젓갈·고춧가루를 넣어 김칫소를 만드는 과정이
열 배쯤 더 고되다.
그 힘든 일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스스로에게 위로한다.
우리 집은 김치를 정말 잘 먹는 가족이다.
작은 통으로만 해도 일곱 통 이상을 해마다 비운다.
김장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인 우리 가족이다.
올해 김치에 문제가 생겼다. 문제는 양념이었다.
시아버지는 김치에 대한 자부심이 유난히 크신 분이다.
어머니 손맛이 좋은 데다,
누군가 “김치 맛있다” 한마디만 하면
어머니보다 더 기뻐하신다.
그래서 친척들에게 김치를 나누는 데도 인심이 후하다.
그 김치 부심이, 올해는 사고를 쳤다.
시댁은 시골이라 장보는 일은 늘 아버님 담당이다.
어머니가 “마늘 한 근만 사 오세요” 하면
아버님은 늘 두 근을 사 오신다.
굴도 마찬가지, 젓갈도 마찬가지.
어머니가 정한 양보다 늘 두 배.
그 두배의 양을 몰래, 그러나 당당하게. 넣어버린다.
“좋은 건 많이 넣을수록 맛있다”
이것이 아버님의 확고한 철학이다.
다행히 그동안은 정말 맛있었다.
그런데 올해 김치는 달랐다.
새 김치를 먹으려고 통을 열자
진한 젓갈 냄새가 먼저 코를 찔렀다.
남편은 한 숟갈도 뜨기 전에
“이거 왜 이래?” 하며 상을 치워 버렸다.
나는 예전보다 못하다는 걸 바로 느꼈다.
한 달만 지나도 시댁 김치는 늘 감칠맛이 살아나던 김치였는데,
이번엔 뭔가 확실히 달랐다.
참다 못한 남편이 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그제야 사태가 드러났다.
“여기도 난리다. 아버지가 새우젓을 말한 것보다 더 넣었어.
짜고 냄새 나서 못 먹겠다.
어쩔 수 없으니 푹 익혀 먹어라. 그동안은 묵은지 먹고 지내자.”
결국, 아버님의 과한 김치 사랑이 그 많은 김치를 망쳐버린 셈이다.
뭐든 많이 넣으면 좋다는 이론이 올해 김치 앞에서 무너졌다.
집집마다 김치 맛은 다르다지만
나 역시 은근히 “우리 시댁 김치가 최고”라는
김치 부심을 가지고 살았다.
하지만 올해는 그 부심을 과감히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문득 걱정이 든다.
이미 지인에게 김치 한 통을 줬는데… 그 집은 괜찮을까?
김치가 푹 익으면 다시 예전 맛을 찾을까.
올해 김치는 유난히 많은 걸 가르쳐준다.
사랑도, 젓갈도 과하면 탈이 난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