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큰아들 절친 엄마가 연락이 왔다.
아들 덕분에 알게 된 인연으로 나보다 나이가 많아 그냥 언니라 부른다.
언니들과 나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 모두 아들 둘.
차이점이라면 언니들의 둘째가 우리 첫째의 절친이라는 것,
그리고 언니들은 이미 입시를 한 차례 겪은 선배 학부모라는 점이다.
동네 카페에서 만난 우리는 자연스럽게 아이들 이야기로 흘러갔다.
언니들의 얼굴에는 피로가 묻어 있었다.
한 언니의 첫째는 성적이 좋았지만 원하는 점수를 받지 못해 재수를 하고 있고,
다른 언니의 아이는 대학에 입학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학교와 전공이라 반수를 선택했다고 했다.
두 아이 모두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 했다.
이미 한 아이의 입시를 치른 사람들이었지만,
한숨은 여전히 깊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이 일은 남의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언젠가 나에게도 닥칠 풍경일지 모른다.' 라는 생각
그런데 이야기를 들을수록
나는 입시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또렷해졌다.
그동안 나는 관심이 없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예전에 한번 아들에게 물은 적이 있다.
“엄마가 네 입시에 너무 무관심한 거 아니야?”
그때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알아서 뭐 해? 내가 더 잘 알아야지.”
그 말이 고마웠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믿기로 했다.
하지만 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너무 내려놓은 건 아닐까, 잠시 흔들리기도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나는 교육에 꽤나 열심이었다.
영어, 조기교육, 영재교육…
안 해본 게 없을 만큼 분주했다.
‘아이들은 잘해야 한다’는 기준이 분명했다.
그런데 첫째의 사춘기를 지나며
나는 극성엄마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왔다.
공부하라는 말도 하지 않았고,
성적표를 보여 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온라인 성적 조회조차 해본 적이 없다.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보다
마음이 단단한 아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성적보다 아이의 표정이 먼저 보였고,
등수보다 하루의 기분이 더 궁금해졌다.
학원도 아이가 원하면 보내고,
원하지 않으면 보내지 않았다.
그 선택조차 아이의 몫이라고 믿었다.
물론 불안이 없었던 건 아니다.
내 무관심이 아이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스스로를 의심한 날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주변의 진짜 어른들이 해주는 말이 나를 다시 세웠다.
“너는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있다.”고
카페에서 언니들은 내신 이야기, 전략 이야기로 바빴다.
나는 잘 모르는 이야기에 아는 척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다 한 언니가 그런 나를 눈치 챘는지 웃으며 말했다.
“너 진짜 다 내려놨구나.”
맞다. 나는 내려놓았다.
나는 좋은 대학을 나오지도, 공부를 잘한 사람도 아니지만
내 인생이 실패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먹고 싶은 걸 먹고,
가끔 좋아하는 곳으로 떠나며
이만하면 충분히 잘 살고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아이에게도 그 기준을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우리 집은 아이들이 유아, 초등시절보다 평화롭다.
고3이지만 예민함없이 늦은시간에 집에 와도 스스로 자신을 챙기는 첫째와
공부엔 관심 없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알고 집안일을 도와주는 둘째.
남편도 나도 소리 지르는 일도, 싸우는 일도 거의 없어졌다.
예전에는 아이를 높은 기준에 맞추려 애썼다면,
지금은 기준을 아이에게 맞춘다.
아이들의 상처는 부모의 태도가 바뀌면서 조금씩 아물었다.
걱정이라는 이름의 상처도 이제는 더 만들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서로가 편안한 기준 안에서 살고 있다.
이 기준이
지금의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