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우리 집 일요일에는 변하지 않는 공식이 있었다.
광고 속 세상이 “일요일은 짜파게티”를 외치던 때에도,
우리 삼남매의 식탁은 늘 같은 답을 가지고 있었다.
일요일은 떡볶이.
이모를 도와 식당 일을 하던 엄마에게 주말은
쉬는 날이 아니었다.
엄마는 우리가 잠든 사이 조용히 집을 나섰다.
대신 부엌에는 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커다란 냄비에 준비된 빨간 육수,
한쪽에 담긴 떡과 오뎅, 씻어 둔 채소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했다.
그저 넣고 끓이면 되었다.
다른 양념은 필요 없었다.
실패도 없었다.
그렇게 완성된 떡볶이는 언제나 맛있었다.
그때의 떡볶이는 그야말로 가장 완벽한 형태의 밀키트였다.
엄마는 이미 오래전부터 미래의 방식을 살고 있었던 셈이다.
늦게 일어난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팬을 불 위에 올렸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소리, 금세 퍼지는 달큰한 냄새.
완성된 떡볶이는 그릇에 덜지 않고 팬째 식탁에 올렸다.
그리고 밥 대신 떡볶이를 먹었다.
10대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아니, 그것이 최고였다.
떡은 쫄깃했고 국물은 달았다.
입 안 가득 퍼지는 맛 속에는 늘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출근 전 바쁘게 움직였을 엄마의 시간,
우리를 생각하며 맞추었을 간,
깨우지 않으려 조심했을 발걸음.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지 않았지만,
분명 사랑을 먹고 있었다.
엄마는 “알아서 챙겨 먹어라”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단 한 주도 빠짐없이 준비했고,
우리는 단 한 번도 질리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각자의 가정을 꾸린 지금도
엄마의 밀키트는 계속된다.
친정에 다녀오는 날이면 국이며 찌개,
때로는 갈비찜까지 봉지봉지 싸 들려 보낸다.
바쁘다 말하는 딸이 혹여 식구들 밥을 거르지는 않을지,
사위 눈에 미안한 모습은 아닐지,
엄마의 걱정은 늘 그 자리에 있다.
이제는 세 집 몫이 되었지만 엄마는 힘들다 말하지 않는다.
엄마의 부엌은 좀처럼 문을 닫을 줄 모른다.
생각해 보면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떡볶이의 맛이 아니다.
그 빨간 국물 너머에 있던 사람,
나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하던 마음,
말없이 남겨진 배려의 온기다.
그래서일까.
가끔 그 떡볶이가 먹고 싶어진다.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마음이 허기져서.
오늘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
“엄마, 그때 그 떡볶이 기억나?”
아마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말할 것이다.
“왜, 또 먹고 싶나?”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나는 다시, 오래전 일요일 아침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