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책 말고 설렘을 빌리던 날들

by 박하


책은 사서 읽는다 VS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다.


나는 오래도록 ‘사서 읽는 사람’이었다.

기간에 얽메이지 않고

마음대로 책에 밑줄도 그을 수 있어서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 보다는 사서 읽기를 선호했다.

그래서 도서관 갈 일이 별로 없었고

젊은 시절의 도서관은 낯선 공간에 가까웠다.

도서관은 책을 읽는 곳이라기보다

숙제를 하거나 시험공부를 하러 가는

조금은 긴장된 장소였다.


어릴 적 우리 동네에는 가까운 도서관이 없었다.

같은 구에 작은 도서관이 하나 있었지만 걸어가긴 멀었고,

옆 구의 큰 도서관은 버스를 타야 했다.

굳이 가지 않아도 되었기에 나와는 거리가 먼 장소였다.


그러다 버스를 혼자 타고 다닐 수 있게 된 고등학생 무렵,

나는 유명한 공원 안에 있던 도서관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 그곳에 들어섰을 때의 느낌을 아직도 기억한다.

중학생, 고등학생, 어른들까지

모두가 조용히 자리를 잡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

늘 집에서만 공부하던 나에게 그 풍경은 하나의 문화처럼 보였다.

‘아, 사람들은 이런 데서 공부를 하는구나.’


그날 이후 도서관은 나에게 새로운 세계가 되었다.

자료실도 있었고

지하에는 매점도 있었다.

공부하다 출출해질 때 먹는 끓여주는 라면 한 그릇.

그건 정말, 여고생에게 허락된 최고의 사치였다.


요즘 도서관에는 왜 그런 매점이 없을까?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들때가 많다.

그때의 도서관은 공부의 장소이면서

동시에 만남의 장소였다.

남녀가 분리되지 않았고,

칸막이 대신 긴 테이블이 놓여 있던 그곳.

마음에 드는 누군가가 있으면

어느 순간 작은 종이 쪽지가 손에 들어왔다.

쪽지를 받은 친구는 그날 하루의 주인공이 되었고,

주변 친구들까지 함께 들떠

공부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우리는 도서관에 공부를 하러 간 건지,

연애를 하러 간 건지 헷갈릴 때가 더 많았다.

그래서 나에게 도서관은 책을 빌리는 곳이라기보다

라면 냄새와,

넓은 책상 하나를 차지했다는 작은 자부심과,

종이 한 장에 담긴 설렘이 가득한 공간이다.


얼마 전, 점심이 지난 시간

도서관 강의가 있어서 방문했다.

어디선가 익숙한 냄새를 코끝을 자극했다.

지하에 매점이 있는 오래된 도서관이었다.

순간, 나는 고등학생으로 돌아가 있었다.

공부보다는 딴생각이 많았고,

수다와 웃음이 더 중요했던 그 시절의 나로.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도서관에는 책의 기억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무엇보다 사람의 기억이 먼저다.

설레고, 웃고, 들키지 않게 마음을 주고받던

비밀스러운 청춘의 공간.

그래서 나는 오늘 조용히 고백해 본다.


도서관은,

나에게 작은 일탈의 장소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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