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

[사과의 길] 김철순 시/김세현 그림/문학동네

by 박하


표지를 보는 순간, 마음에서 작은 하트가 톡톡 튀어 올랐다.

검은 바탕 위에 드러난 붉은 껍질과 하얀 속살.

단순한 색의 대비인데도 어쩐지 오래 바라보게 된다.

황토빛 면지를 펼치는 순간에는

누군가 막 이곳에 사과씨 하나를 묻어 두었을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스며든다.



무엇보다 이 책은 그림이 오래 남는다.

한 장 한 장이 액자에 넣어 걸어 두고 싶은 장면들.

요정처럼 보이는 아이를 따라

나는 천천히 사과의 길을 걷는다.

걷다 보니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처음 과일칼을 쥐고

사과를 깎아 보던 날.

엄마 손에서는 끊어지지 않던 껍질이

내 손에서는 자꾸 툭툭 끊어졌다.


그러다 어느 날,

길게 이어진 껍질이 뱀처럼 늘어졌을 때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뻤다.

누구에게든 보여 주고 싶어서

한참을 들고 다녔던 기억.


책 속의 아이도 그랬을까.

엄마가 깎아 주는 사과를 바라보며

이 열매가 식탁까지 오기 위해 지나온 시간을

몰래 상상해 보았을까.


껍질은 롤러코스터가 되고,

미로가 되고,

어디론가 떠나는 탐험의 길이 된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햇살을 견디고,

바람을 지나고,

마침내 달콤해졌을 사과 한 입이

입 안에 넣어지는 기분이 전해진다.


시댁가는 길에 지나는 밀양 얼음골 사과 이야기도 떠올랐다.

차가운 기운을 견디며 더 단단해지고 맛있어 지는 사과

어쩌면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조금의 추위를 지나야

제 빛깔을 얻는 존재.


이 그림책은 시와 그림이 서로를 꼭 끌어안은 책이다.

눈으로 한 번, 마음으로 또 한 번

천천히 익어 가는 시간을 만나게 해 준

기분 좋은 그림책


박하샘의 밑줄


해님이 내려와서 아기를 안아 주었어요.


아기 사과는 있는 힘을 다해

사과나무에 매달려 있어요.

엄마가 깎아 놓은 사과는

아주 달고 맛이 있어요.



♡ 이런 분들께 추천해요


사과가 자라는 시간을 상상해 보고 싶은 사람

시와 그림으로 위로받고 싶은 사람

천천히 익는 삶을 믿고 싶은 모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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